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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처방전

국내 사망 원인 3위, 폐렴

고령층에 치명적, 예방이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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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은 인류를 죽이는 대장 질환(Captain of the Men of Death)이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캐나다 의사 윌리엄 오슬러는 폐렴을 이렇게 표현했다. 병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면 대부분 암이나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65세가 넘으면 암보다 폐렴으로 사망할 위험이 더 높을 정도로 폐렴은 치명적인 질환이다. 실제 폐렴은 암, 심장 질환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의 사망 원인 통계(2020년)에 따르면 10만 명당 사망자는 폐렴이 43.3명으로 암(160.1명), 심장 질환(63.0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2010년 14.9명에서 10년간 3배 가까이(190.9%) 늘어 사망 원인 6위에서 3계단이나 올랐다.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42.6명)은 그 뒤다.

권대익(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오한, 기침 등 감기 증상과 비슷해
폐렴은 세균, 바이러스 등 다양한 원인균이 폐의 세(細)기관지 이하 부위에 감염돼 발생하는 염증성 폐 질환이다. 폐렴에 걸리면 3억~5억 개에 달하는 폐 속 작은 공기 주머니(허파꽈리)에 고름, 체액이 가득 차 숨쉬기가 힘들다. 폐 방어 기능이 떨어지면서 발열과 기침, 가래, 호흡곤란, 가슴 통증 등이 나타난다. 가래는 흔히 누런색이나 녹색을 띠지만 암적색 또는 객혈 등으로 다양하다. 비정형 폐렴이라면 가래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구토, 설사 같은 증상과 함께 두통, 식욕부진, 피로감, 오심, 복통, 근육통, 관절통 등도 나타난다. 오한, 기침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고 염증으로 폐에 물이 차면서 고열과 가래를 동반한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까지 염증이 침범하면 숨 쉴 때 아프고 숨이 차게 된다. 오지연 고려대 구로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고령인은 폐렴 여부를 빨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폐렴 초기에는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서 단순 감기로 오인하기 쉽다. 그렇다면 폐렴과 감기 증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래 색깔’과 ‘발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폐렴은 감기에 비해 열이 심하고 누런 가래가 많이 나오는 특징이 있으며 가슴통증을 보이기도 하지만, 감기는 마른기침과 하얀 가래가 나오는 편이다. 체온을 쟀을 때 37.8도 이상이라면 열이 있는 상태로 봐야 하는데, 폐렴 환자의 80% 이상은 38도 이상 고열이 난다. 이상훈 분당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렴은 감기보다 열이 더 나고 오한이 반복적이고 대부분 오랫동안 지속된다”며, “콧물, 재채기, 목 아픔보다 기침, 가래, 객혈, 호흡곤란, 가슴 통증이 더 심하다”고 했다.
고령인은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이유 없이 무기력하거나 의식이 저하되면 폐렴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고령인 폐렴 환자의 20~30%는 기침, 가래, 고열 등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노화로 인해 백혈구 수가 줄고 활동성이 떨어지면 가래가 잘 안 나오고, 고열도 발생하지 않는다. 김창오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65세 이상 고령인은 노화로 인한 폐 변화와 기저 질환 등으로 인해 폐렴에 노출될 위험이 높지만 폐렴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대부분 폐렴을 앓은 지 2주가 지나서야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고령인·임신부·어린이 고위험군, 50% 입원 치료
건강한 성인은 폐렴에 걸리더라도 별다른 이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경증이라면 항생제 치료와 휴식만 취해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이거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65세 이상 고령인이 폐렴에 걸리면 5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폐렴은 고령인에게 치명적이다. 국내 폐렴 사망자의 90%가 65세 이상 고령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위험군인 임신부나 고령인, 어린이가 폐렴에 걸리면 50% 이상 입원 치료를 받는다.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중증 폐렴이라면 35~50%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진 고령인이나 만성질환자는 폐렴이 패혈증으로 악화해 목숨을 잃을 위험이 높다. 패혈증은 미생물 감염에 의해 주요 장기에 장애를 유발하는 질환으로 중증 패혈증과 패혈성 쇼크가 생기면 사망률이 각각 20~35%, 40~60%나 된다.
김주상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렴은 급성으로 나타나고 고열, 기침, 가래가 특징이지만, 고령인은 기침, 가래가 생기지 않고 숨이 차거나 힘이 떨어지는 등 비전형적인 증상을 보인다”며, “65세가 넘은 고령인이 감기 증상에 고열, 기침, 가래가 사흘 이상 계속된다면 병원에서 폐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고령인이 폐렴으로 많이 사망하는 이유는 노화로 인해 대부분 폐 기능과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폐렴에 걸리면 진행 속도도 빠르고 잘 이겨내지 못한다. 또한 암,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도 면역력이 약해 치료가 잘 되지 않아 패혈증 등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다. 과도한 항생제 사용도 폐렴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힌다. 폐렴 입원 환자의 6~15%는 초기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약이 잘 듣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따라서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항생제를 자주 쓰지 말아야 한다.
이 밖에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이 신체 활동을 줄이면 폐렴으로 인한 입원과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미향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2009년~2012년 건강검진을 받은 18세 이상 심혈관 질환(협심증, 심근경색 등) 환자 100만여 명을 대상으로 신체 활동량과 폐렴에 따른 사망률(2018년까지 추적)·입원율(2019년까지 추적)의 상관관계를 장기간 추적 관찰한 결과다. 정미향 교수는 “심혈관 질환자가 신체 활동을 조금이라도 늘리면 폐렴으로 인한 입원이나 사망 위험성을 낮출 수 있고, 이런 효과는 75세 이상 환자에게서 더 뚜렷했다”고 전했다.

폐렴구균 예방백신 맞으면 80% 효과
폐렴은 증상을 살펴보고 흉부 X선 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혈액검사상 백혈구 수치, 객담 검사 등을 토대로 진단한다. 폐렴이라면 원인에 따라 항생제 복용으로 치료한다. 국내 폐렴 원인균은 폐렴구균이 40~50%로 가장 흔하다. 이 밖에 헤모필루스균, 마이크로플라스마, 녹농균 등도 발병 원인균이다.
폐렴의 치료에는 원인균에 따른 항생제 선택이 중요하지만 대부분 원인균을 알 수 없고 원인균이 배양돼도 균을 동정(어떤 분류군에 속하는지 식별하는 것)하려면 3일 이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폐렴이 의심되면 폐렴구균에 대한 항균력이 있는 항생제를 택한다. 항생제 처방 후 상태가 호전되면 5~7일 사용 후 처방을 중단한다. 다만 폐에 농이 차거나 괴사하거나 결핵으로 폐가 망가졌거나 기관지확장증 같은 구조적 폐 질환이 있으면 원인균이 다를 수 있어 항생제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폐렴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령인,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이라면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다. 예방접종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폐렴구균 백신은 13가지 균을 막는 13가 백신, 23가지 균을 막는 23가 백신이 있다. 폐렴 예방에는 단백접합백신인 13가 백신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어 만성질환자에게는 두 가지 모두 접종하는 것이 권고되고 있다. 특히 고령인은 폐렴구균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좋은데, 만 65세 이상이면 23가 백신을 보건소와 지정의료기관 등에서 무료 접종할 수 있다.
폐렴균은 다양하지만 예방백신은 폐렴구균만 막을 수 있기에 30~40%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폐렴구균도 단백결합백신은 50%만 효과 있어 전체적으로 20% 정도만 백신으로 폐렴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페렴구균 백신을 접종하면 침습성 감염을 80% 이상 예방하고 중증도와 사망률을 많이 낮출 수 있으므로 위험군이라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김주상 교수는 “폐렴구균 백신은 65세 이상에서 75%,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 호흡기 질환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65~84% 예방 효과가 있다”며, “호흡기가 약하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흡연자나 만성질환자도 고위험군에 속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65세 이상 고령인이 함께 사는 가족들도 전염 가능성을 고려해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폐렴구균 백신은 코로나19 중증 악화 예방에도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지연 교수는 “폐렴 백신 접종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했을 때 30% 정도 코로나19에 덜 걸리고 치명률도 낮다는 보고가 있다”며, “따라서 폐렴 예방접종은 폐렴과 중증 악화를 막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코로나19 감염 시 중증 진행을 억제하기 위해 고령층과 고위험군은 폐렴구균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폐렴을 비롯한 호흡기감염증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손 씻기다. 평소 감염되지 않도록 외부 활동 후 손을 깨끗이 씻거나, 규칙적이고 영양 있는 식사, 하루 6~8시간 수면으로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가정에서의 관리도 중요하다. 특히 실내 온도와 습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실내 온도는 20도 내외로 유지하고 습도는 40~60% 선으로 맞춘다. 어린이의 경우 식욕이 떨어져 평소보다 먹는 양이 줄어도 물, 이온음료 등 수분을 조금씩 자주 마시도록 해야 한다.
또 고령인이나 어린이들은 감기에 걸린 사람과 접촉하면서 폐렴이 많이 발생하므로 감기가 유행하는 시기에는 되도록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한다. 이 밖에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지는 영·유아나 고령인은 목욕을 한 뒤 재빨리 물기를 닦아내는 것도 폐렴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TIP

생활 속 폐렴 예방법

평소 30초 이상 손을 깨끗이 씻는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되도록 피한다.
흡연을 삼가고 자주 양치질해 구강을 청결하게 한다.
실내 온도는 26~28도, 습도는 40~50%를 유지한다.
65세 이상이나 만성질환자는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한다.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있는 영양 섭취,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기침별 의심 호흡기 질환

급성기침(열 동반): 폐렴,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COPD), 기관지확장증, 결핵, 천식
만성기침: 비염, 후비루증후군, 천식, 위 식도 역류 질환
마른기침(가래 동반 X): 비염, 위 식도 역류 질환
마른기침(가래 동반 O): 기관지확장증
각혈: 폐암, 기관지확장증, 폐 손상 질환, 결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