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느끼다

소곤소곤 너에게 | Theme :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박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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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로서 누구보다 봉사활동에 열심인 박영혜 씨는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배우 이태성 씨의 어머니로 출연해 큰 관심을 받으며, 장애인 부부의 이야기 <짜장면…고맙습니다>에 참여한 박영혜 감독을 만나 보았다.

이경희 – 사진 안지섭

찢어진 청바지도 잘 입고 다니고 새롭게 배우고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것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남편 영향도 컸어요. 손주를 키우면서 저 역시 자기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자세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Q.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어떠한 삶이 투영되었기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지 지나온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저는 사실 한국무용을 전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무용수로 활동을 좀 하다가 결혼하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을 내조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요. 그러다가 아들 태성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방과후교사가 되어 무용반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교 무용도 했어요. 그러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활동을 못하게 되고 손자가 태어나면서 아예 외부 활동을 접었습니다. 그러다가 큰 아들 태성이와 함께 <미운 우리 새끼>에 나가게 되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해 재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Q. 영화 제작에 참여하시면서 주변 사람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첫째 아들 태성이가 배우이다 보니까 카메라 앵글 잡는 법, 연출기법 등 영화연출에 대해 자세히 나온 책을 주면서 현장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요. 남편은 늘 저의 도전을 지지해주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변함없이 응원을 해줬어요. 또 영화음악은 둘째 아들인 유빈이가 담당해주었고요.

저는 끝과 시작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 때 배 속에 있던 시간이 끝이었다면 바로 직접 호흡하면서 사는
삶이 시작되잖아요. 그것처럼 끝과 시작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Q.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환갑이 지난 나이에 새로운 도전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도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저희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실 때 “엄마, 낮에 심심한데 아파트 경로당이라도 가보세요”라고 권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얘, 내가 왜 그 노인네들하고 노니?”라고 하시더라고요. 80세가 넘으셨어도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거지요. 제게도 은연중에 그런 마음이 있지 않나 싶어요. 손주까지 봤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고, 63세지만 나이 때문에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찢어진 청바지도 잘 입고 다니고 새롭게 배우고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것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남편 영향도 컸어요. 손주를 키우면서 저 역시 자기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자세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Q. 남다른 교육법으로도 화제가 많이 되셨습니다. 아이들 교육이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이 없다고 하는데 감독님의 자녀, 손자 교육관이 궁금합니다.
“자식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목사님 말을 항상 기억하려고 해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 의무만 받은 것이지 아이를 내 소유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잖아요. 예전에 시누이가 학습지가 밀렸다고 아이를 혼낸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엄마, 이건 내가 선택해서 한 게 아니라 엄마가 결정한 거잖아!”라고 항의를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를 키우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모든 선택권을 자식들한테 주고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했죠. 태성이가 야구를 하다가 부상을 입고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존중해줬어요. 대신 아들의 현명한 선택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했죠. 손자인 한승이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정서적으로 안정된 분위기에서 많은 곳에 가보고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걸 찾고 또 책임질 수 있는 아이로 키우려고 해요.

Q. 월간 <MG새마을금고> 이번 호 주제가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인데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끝과 시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끝과 시작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 때 배 속에 있던 시간이 끝이었다면 바로 직접 호흡하면서 사는 삶이 시작되잖아요. 그것처럼 끝과 시작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촬영은 끝났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 것처럼 말이죠. 제가 아픔이나 좌절에 무너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아프고 힘든 일 뒤에는 또 다른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Q. 평소 새마을금고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새마을금고라는 말 자체가 우리 세대에는 굉장히 정겨운 말이잖아요. 뭐랄까 제게는 동네 사랑방, 마을회관 같은 느낌이에요. 안산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데, 딱 대각선에 새마을금고가 있거든요. 출퇴근을 하면서 늘 그 앞을 지나다니는데 이율도 높고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거래처를 옮겨볼까 지금 생각중입니다. 하하.

우리 모두가 장애인분들이나사회적 약자의 삶에 조금만더 관심을 갖고 이분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도록 노력한다면 사회제도가 변화하고 더 행복한 세상이 찾아올 거라고생각합니다.

Q. 올해는 정말 잊지 못할 한해였을 것 같습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해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마구마구’라는 봉사단체가 있어요. 마술과 동화구연을 함께 보여주는 공연봉사단체인데, 코로나19 때문에 꽤 오랫동안 공연을 하지 못했거든요. 어르신들, 아이들과 눈을 맞추면서 다시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고요. 내년에는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 같은 저희 세대의 놀이를 소재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나중에 시나리오로 만들어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짜장면…고맙습니다> 배우 오디션을 봤을 때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참여한 배우들 모두가 하나 같이 장애인들을 극심한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표현하시는 거예요.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아름다운 미소와 만 가지 표정을 갖고 있는데 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이 아픈 사람으로만 표현을 할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보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나중에 30대 후반 정도 되는 남자배우가 오셔서 감사 인사를 하는 거예요. 자기가 장애인 연기 연습을 하면서 많은 영상을 찾아보고 공부를 했는데 그때까지 몰랐던 장애인들의 불편한 삶에 대해 깨닫게 됐다면서요. 합격 당락을 떠나 자신에게 이런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에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구나’하는 사명감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장애인분들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이분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도록 노력한다면 사회제도가 변화하고 더 행복한 세상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