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 공감하기

유튜버가 된 대법관,
일상 가까운 곳에서 법을 이야기하다

박일환 전 대법관·변호사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 13만 6천 명. 이것만으로 대단히 ‘성공적’ 이다. 놀랍게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도 아닌 법률인이, 그것도 법조계 최고봉이라 할 대법관까지 지낸 분이 그 주인공이다. 평생 법복 입던 판사의 위엄을 벗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박일환 변호사를 만났다.

글. 김수연 사진. 안지섭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주중에는 변호사로서 일을 하지만, 주말엔 유튜브 방송을 녹화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주제를 골라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요. 요즘 사람들이 관심 갖는 주제, 도움이 될만한 게 뭘까를 고민해야 하고 그에 맞는 판례도 찾아야 합니다. 또 그걸 일반인들이 알기 쉬운 언어로, 아주 짧은 분량으로 구성해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잖은 궁리가 필요해요. 어렵고 길면 사람들이 잘 안 보잖아요.

평소 새마을금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새마을금고 역사가 한 50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막 대학을 다닐 때 처음 시작된 기억이 있으니까요. 서민들을 위한 금융으로 사회적으로 좋은 역할을 많이 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한 10여 년 전부터 집 근처 새마을금고에 가입해 이용하고 있는데, 직접 거래해 보니 친절한 건 물론이고, 모든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느낌이어서 ‘다가가기 수월한 금융’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엔 어려운 시절도 거쳤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젠 어느 금융기관에 비겨도 손색없을 만큼 튼실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 사보 테마가 ‘든든한 내 편’입니다. 변호사님에게 ‘든든한 내 편’은 어떤 분일까요? 변호사님이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 경험도 듣고 싶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에게 ‘든든한 내 편’이라면 가족들이죠. 가족이란 뭔가 특별한 걸 해줘서라기보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료 법조인이나 후배들 가운데서도 ‘아,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해서 참 좋구나’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유능한 법률가로서의 자질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배울 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나갈 때, 참 든든하고 힘이 납니다. 이들 모두가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죠. 그들과의 오랜 신뢰 속에, 나 또한 그들에게 마찬가지의 역할이었기를 바라고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 그런 관계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법이라는 건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다소 멀고 두렵게 느껴지는 영역인데요, 어느 순간 삶 전체를 좌우하는 큰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법관으로 살아온 당사자로서 법은 과연 모든 사람에게 ‘든든한 내 편’이 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법을 잘 알면 내 편이 되지요. 모르면 내 편이 되기 어려워요. 법의 잣대에서 내가 당당할 수 있고 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으려면, 법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한 거예요. 기본적으로 법이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게 법이죠. 무작정 나한테만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바랄 수는 없어요. 세상일이란 게 항상 상대방이 있기 마련인데, 내 입장에서만 볼 게 아니라 상대방의 권리에 대해서도 존중할 수 있을 때, 법은 모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원 대법관으로서 근무하셨지요. 대법관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해 주세요. 또 대법관 재직 중 가장 뜻깊었던 판결 하나를 꼽아본다면 어떤 건가요?
대법관은 쉽게 말해서 최종심을 담당하는 법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든 최고 상급법원인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그걸로 종결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항상 최고의 신중함이 요구되는 자리인 것이고, 그래서 힘들기도 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2007년 제주도지사 무죄판결 건이었습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1, 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은 김태환 전 도지사에게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것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입니다. 이전까지는 과정에서 위법이 있더라도 증거 내용이 분명하다면 채택이 가능했어요. 이 사건은 ‘위법수집 증거배제의 원칙’을 적용한 첫 판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민주사회인 만큼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분명히 한 사례죠.

판사로서 34년을 보내시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같은 법조인의 영역이지만 지위와 역할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판사는 법률적 판단의 종결자로서 원고와 피고의 말을 다 듣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자기 의뢰인을 위해서 노력하고 최대한 대변하는 사람이죠. 판사일 때는 좋든 싫든 배당된 사건은 무조건 다뤄야 해요. 반면 변호사는 자기가 맡기 싫은 사건은 안 맡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좀 편한 측면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어쨌거나 판사일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덜한 측면은 사실 있더군요.

스스로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든 세대들에게
특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겁먹지 말고 우선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차산선생법률상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지요.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구독자들이 남긴 댓글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도 소개해 주세요.
차산(此山)은 어릴 적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저의 호입니다. 그냥 ‘동네 뒷산’이라는 뜻이죠. 제가 유튜브를 하는 게 ‘일반인에게 법률상식을 전하는 가깝고 친근한 존재’가 돼보자 하는 것이니 마침 그 뜻도 맞는 것 같아요. 시작은 딸의 권유로 했던 건데요, 처음엔 유튜브가 뭔지 잘 몰랐으니 엄두가 안 나다가 차츰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뭔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서 내가 아는 법률 지식과 경험을 일반인에게 손쉽게 전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제 2년 좀 넘었는데 구독자가 13만 5천 명이 넘어요. 주로 20~30대 젊은 층들이 저의 채널을 보고 있다는 사실도 상당히 의미 있어요. 댓글을 통해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도 느끼죠.

유튜브에서 소개한 법률상식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어떤 겁니까?
주로 다루는 콘텐츠는 생활 속 판례 이야기나 사법제도의 변화, 저의 개인적인 법조 경험 등입니다. 그중 ‘농담으로 한 회사 그만둘래 발언 후 퇴직 발령?’이라는 콘텐츠가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상사에게 얘기했다가 퇴직 조치가 된 사례죠. 민법에 의하면 비진의(非眞意) 의사 표시라도 효력이 있다고 돼 있지만, 상대가 농담임을 알거나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효력이 없다고 돼 있습니다. 이 사례는 1심에서는 ‘구두상으로나마 퇴직 의사를 밝혔으니 회사 조치가 정당하다’ 고 판시했으나 2심에서는 ‘주의 깊게 들었으면 농담임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여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죠. 이렇게 누구나 궁금할 법한 생활 속 법률상식을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으로 쉽게 설명해 주니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법조계 진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특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겁니까?
유튜브를 할 때, 저는 단순히 법을 해설하는 데서 그치지는 않으려 해요. 그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하죠. 법이란 게 단순히 암기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본질이 무엇이며 앞으로의 발전방향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이어져야 합니다. 법조계 진출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호사로 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유튜브 활동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유튜브도 지금까지는 일체의 광고 없이 저 혼자 삼각대 하나 놓고 만드는 수준이라 세련되지도 않고 다소 허술한 면도 있었는데, 마침 지난 7월부터 법률방송에 제 코너를 하나 만들어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혼자 카메라 보고 얘기하는 식이었지만, 이제 진행자가 묻고 제가 답하는 식으로 달라지거든요. 그걸 편집해서 제 유튜브에도 올리게 되니 화질이나 구성에서 한결 나아질 수 있게 된 거죠. 보시는 분들에게 한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MG가족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한말씀 부탁합니다.
요즘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하지요. 변화의 폭과 그 속도가 상당해요. 그렇다고 멈춰서 있다 보면 자꾸 뒤처지게 돼요. 빨리빨리 적응해서 함께 그 흐름 가운데 있고자 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우선 이 작은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는지 몰라요. 제가 유튜브를 하게 된 것도 이거 하나 놓고 가능했던 거거든요. 스스로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든 세대들에게 특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겁먹지 말고 우선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