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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의 김치는
발효과학의 종합예술입니다

강순의 김치명인

무더위와 바쁜 일상에 지친 하루를 마칠 때마다 간절히 생각나는 건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 소담하게 담아낸 밥 한 공기에 잘 익은 김치,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가 올려진 밥상이라면 몸과 마음의 피로가 다 사라질 듯싶다. 여름 장마가 주춤하던 날, 김치명인 강순의 선생을 찾았다. 한평생 나주 나씨 종부로 명문가의 음식문화를 익혀온 명인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구수한 듯 유쾌하다. 툇마루에 앉아 먹는 여름 밥상의 그 맛이다.

글. 김수연 사진. 안지섭

요즘도 방송과 유튜브로 활약이 대단하시더군요.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어도 저는 아직 좀 바쁘게 삽니다. 살림도 해야지, 강의도 해야지, 매주 유튜브 녹화도 해야지, 방송 나가고, 홈쇼핑도 하느라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가네요. 다행히 체력은 아직 괜찮아요. 우리 나이에는 아픈 사람들도 많긴 한데, 감사하게도 버틸 만하네요. 어쩌다 피곤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일할 때는 평생 몸에 익어 그런가 힘든 줄 모르고 하고 있어요. 하하, 타고난 것 같아요.

평소 새마을금고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새마을금고는 예나 지금이나 줄곧 다니고 있어요. 예전 고향에 살 때부터 이쪽으로 이사를 오고서도 마찬가지죠. 어딜 가나 새마을금고는 동네 가까운 데에 다 있잖아요. 특히 나같이 살림하는 주부나 노인들은 새마을금고가 참 편한 것 같아요. 찾아가면 다들 친절하게 맞아주지, 궁금한 거는 다 알아듣도록 자세히 설명해주니까요. 다른 은행에 가면 그런 거 없잖아요. 또 내가 방송에도 좀 나와서 그런가 알아보고 좋아해 주는 분들도 있어요. 유튜브에서 봤던 얘기도 하고요. 그러니 나도 기분이 좋지요. 재미나게 할 얘기도 많아요.

나주 나씨 반계공파 25대 종부로서 음식문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처음 종가에 시집오셨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많이 힘들지는 않으셨는지요?
스무 살에 시집왔는데, 처음에는 고생도 많았어요. 그땐 시집살이가 다들 고된 시절이었잖아요. 나야 뭐 살림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까 힘이 들었지요. 3대가 한집에 살았고, 집안 머슴이며 일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식솔이 어마어마했어요. 끼니마다 가마솥에 쌀을 두 말은 안쳤던 것 같아요. 거기다 때마다 서울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지, 맨날 밥상에 술상에 온종일 상 차리는 게 일이었죠. 그래도 시어머니랑 둘이서 어떻게든 다 했어요. 그러면서 배우기도 많이 배웠죠. 그런데 습관이 무섭다고, 지금도 밥을 10인분씩은 하는 거 같아요. 식구도 없는데 말이에요. 하하! 밥이 모자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주 박혀 있어서 그래요.

나주 나씨 종가의 음식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선생님이 평생 해오신 맛내기 비법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떤 집안이든 음식 맛을 말할 때는 장맛이 제일 중요해요. 우리네 음식이 고추장, 된장, 간장 같은 게 기본이잖아요. 다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익혀낸 발효 음식들이죠. 장이 맛없으면 어떤 음식도 맛이 없어요. 이걸로 간도 맞추고 다양한 재료와 매치해서 맛을 내는 거거든요. 장을 담다 보면 해마다 다 달라요. 짤 때도 있고 어느 해는 기가 막히게 맛있고요. 조금 맛이 덜할 땐 한 1년 묵혔다 먹으면 좋아지기도 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봐야 해요. 그런데 요즘 보면 장을 가르면서 콩을 삶아 넣는다, 보리를 삶아 넣는다 하더군요. 그건 맛을 수정할 때 하는 건데 그게 마치 원래 법칙인 양 하더라고요. 그래서는 일본 미소된장처럼 돼 버리는데 말이죠. 하여간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장을 젤 중하게 여기고 정성을 들여요. 번거로워도 지금껏 새우젓까지 직접 담가 먹고 있고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배운 거죠. 재료와 발효방식에 따라 맛 차이가 나는 건데, 오래 이어진 집안의 손맛을 버릴 수야 있나요? 이제는 제가 예전 어머니의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 며느리들에게는 나처럼 하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요. 다만, 내가 해 준 걸 맛있게 먹고, 나중에 그 맛을 기억해 스스로 하길 바랄 뿐이죠.

김치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데요. 김치명인으로서 우리 김치의 가치를 어떻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치가 없는 밥상은 상상할 수 없지요. 요즘 건강에 관심들이 많아지면서 발효과학의 우수성을 얘기합니다만, 그건 유명한 회사의 김치냉장고가 해주는 게 아니에요. 우리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그걸 이미 실천해왔죠. 어떤 광고에는 ‘톡톡’ 터지는 김치 익는 소리를 활용하던데, 그거 내가 강의하면서 늘 하던 소리거든요. 잘 익은 김치의 톡톡 터지는 소리에 맛과 건강이 다 담겨 있는 거예요. 요즘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유산균을 챙겨 먹는데요. 김치만 제대로 먹으면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우리 조상들은 그런 훌륭한 유산균을 김칫독마다 다 채워서 먹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셔야 해요. 저는 지금도 김치 두세 종류는 있어야 밥을 먹는 답니다.

‘알토란’이나 ‘주부9단의 만물상’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의 황금레시피는 물론 재기 넘치는 입담으로도 팬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요리를 배우러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 가운데는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제가 요즘 사람들처럼 말주변이 좋으면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텐데, 별로 그렇지는 못해요. 말도 음식도 다 옛날식으로 하니까요. 그래도 그걸 귀하게 여기고 들어주는 분들이 있으니 참 고맙죠. 음식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분들은 참 많지요. 거의 쉬는 날 없이 강의를 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이나 대학교수 부인들이 많이 찾아와요. 아무래도 전통의 예법을 배워 대접할 일이 많은 경우겠죠. 식품영양학과 교수님들 가운데도 저의 제자들이 많답니다. 지금도 방송에 보면 요리 연구가로 이름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저한테 와서 배우고 간 분들이에요.

요즘 더위에 지쳐 입맛을 잃기 쉬운데요, 여름 입맛 살리는 김치나 반찬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맛을 낸다면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마련이죠.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싱싱한 열무김치 아니겠어요? 잘 익은 열무김치 한 보시기면 한 상 뚝딱이죠. 또 요즘 한참 맛있는 가지나 호박으로도 김치를 담가 먹으면 좋은데, 그것도 아주 별미예요. 양배추 물김치도 달고 시원해서 아이들 먹기에 좋고요. 제철 재료가 좋은 게 뭐냐면 값도 싸고 영양도 풍부하다는 거예요. 자세한 레시피를 여기다 다 말해드리기는 어렵고, 저의 유튜브 채널 ‘강순의 나주종가’를 보시면 상세히 나와 있어요. 김장김치며, 뱅어포나 삼색전 같은 반찬도 있고, 각종 계절김치 담그는 법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답니다. 제가 평생 보고 배운 그대로의 방식이죠. 구독해 주시고 직접 해 드신다면 정말 감사하지요.

‘강순의명가’를 운영하시면서 명인의 음식을 일반인들도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지요. 강순의명가의 대표적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명색이 김치명인이니, 포기김치나 백김치, 여수돌산갓김치가 대표적이죠. 돌게장이나 장아찌 같은 밑반찬들도 있고요. 맛의 기본은 신선한 재료에서 나오는 거라 고춧가루나 채소들을 구매하는 일은 직접 챙겨요. 직접 담글 수는 없지만 제가 하는 방식 그대로의 레시피로 정성껏 담고 있습니다. 김치는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게 최고지만, 요즘들은 너무 바쁘니까요. 사먹는 김치는 익히는 것만 잘해도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우선 배추김치를 받았으면 먹기 좋게 갈라서 배추 겉잎으로 싸매요. 그리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꼭꼭 눌러 담아 익히세요. 그렇게만 해도 훨씬 맛있어 진답니다.

이번 사보의 주제가 ‘여유로운 삶’입니다. 명인님이 생각하는 여유로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
살아가는 데 있어 힘들고 뭔가 안 풀린다 싶을 때는 다 내려놓고 좀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안 되는 건 어차피 억지로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주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그냥 노세요. 만약 돈이 없다면 누구한테 꿔서라도 한번 놀아 보는 게 필요해요. 그러다 보면 숨통이 트여서 새로운 뭔가가 다시 생겨나요. 뭐든 기다릴 줄 아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달복달한다고 일이 잘 되는 거는 아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종가음식을 지켜나가면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이신지 말씀해 주세요.
살아가는 날까지 김치 담고 사람들과 음식 만드는 얘기하면서 살아갈 거예요. 어른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나도 자식들 같은 사람들에게 맛있고 정 넘치는 얘기를 전해주면서 살아간다면, 그게 제일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요. 우리 음식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에요. 맛도 맛이지만, 우리 건강을 지키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거든요. 여러분들도 정성 가득한 음식으로 날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