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Life · 한적한 그곳

산속 빨간 등대,
푸른 숲 문화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완주 산속등대

바다는 아직도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이며, 다양성의 총합이 무한대로 깊게 뻗어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북 완주군에 가면 산속에서 이런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색깔을 담고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쉼터, 혹은 영감의 장소로 작용하는 곳, 바로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다.

글. 이경희 사진. 안지섭

방치됐던 폐공장, 지역의 랜드마크로
1980년대부터 전북을 대표하는 대형 종이공장이었던 이곳은 등대 같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공장 하부로는 폐수를 배출하고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유해시설로 미움을 받았고 산업화 물결까지 더해져 결국 문을 닫은 후 20년간 그대로 방치되기에 이른다.
덩치가 커서 누구 하나 손을 대기도 힘들어 긴 세월 동안 버려졌던, 고래뱃속처럼 커다란 이 공간을 다시 들여다본 것은 현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의 원태연 대표였다. 그는 이 공간을 둘러보면서 무엇보다 굴뚝에 사로잡혔다. 넓고 다이나믹한 공간에 다채로운 감성들을 반영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도민과 외지인들 모두에게 등대처럼 빛을 비춰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에서 구상이 시작됐다. 종이공장은 자연스럽게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큰 틀 안에서 차곡차곡 변신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3년간의 준비를 통해서 2019년 5월, 마침내 서른 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산속등대가 문을 열었다. 청년들이 지역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측면에서도 더 없이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
개관과 동시에 산속등대는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꽃처럼 피어났다. 산속등대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생기로 왕성한 기운을 얻으며 푸른 숲처럼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여파는 산속등대도 피해갈 수 없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은 많은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고 싶어 했던 산속등대에까지 잠시 어둠을 내렸다. 그러나 산속등대의 존재감은 결코 그 빛을 꺼뜨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산속등대는 ‘복합’이라는 말처럼 어린이들만의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되기도 하고, 어른들이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는 예술의 자양분이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영감의 자양분이 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버려진 시간을 새롭게 디자인한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는 흔한 로컬 전시관과는 다른 자유로운 감성이 지배적인 새로움을 가진 공간이다. 방치됐던 20년의 세월 속에 바스러지고 폐허가 된 공간은 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로써 활용됐다.
때문에 이곳의 캐치프레이즈도 ‘버려진 시간 속 새로운 문화를 디자인하다’이다. 그러한 가치관을 통해 리모델링 됐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각각 마련된 공간을 따라 전혀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산속등대는 제20회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금상,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상, 제2회 전라북도 콘텐츠 메이커톤 대회 대상 등을 수상하면서 건축 분야에서도 그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지역주민들의 미운털이었던 이 공간이 지금은 자랑거리가 된 셈이다.
먼저 외부 공간인 ‘기억의 파사드’는 가장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는 대표적인 포토존이기도 하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이라는 옛말이 쓰여 있는 회색벽과 높고 붉은 벽돌 담장은 예술적인 감각을 일깨워주면서도 이전 제지공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기획전시관인 미술관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 두드러진다. 공장시절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고 보강작업만을 실시해 예전의 구조물을 그대로 음미할 수 있는 덕분이다. 119평의 너비를 자랑하는 이곳에 대해 최미남 관장은 ‘과거와 현재를 보듬고 있는 건물’이라고 표현한다. 미술관에는 지역을 넘어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의미 있는 콘셉트의 전시를 기획해 올린다. 상설전시관에서는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 언제 오더라도 자신의 감수성을 충족할 수 있다.

산속등대는 흔한
로컬 전시관과는
다른 자유로운 감성이
지배적인 새로움을
가진 공간이다.

산속등대
위치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원암로 82
이용 시간 : 10시∼8시(금·토·일) 10시∼7시(월~목)
입장료 : 일반, 중고등학생 3,000원, 어린이 2,000원, 36개월 미만 무료
홈페이지 : www.sansoklighthouse.co.kr

어른 없이 자유로운 아이들 세상도 인기
산속등대에는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오롯이 아이들만을 위한 ‘어뮤즈 월드’도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질문 지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은 상주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자신들만의 상상력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처음에는 함께 입장하지 못해 걱정을 하셨던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보고, 체험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십니다. 아이들 또한 부모님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성숙하게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코로나19가 심각해 실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운 경우에는 야외에서 비눗방울 체험, 다트 풍선던지기, 추억의 달고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모의 필터링이 아닌, 아이들만의 시선과 감정이 중심이 되는 경험은 몇 번이고 찾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야외에는 더욱 놀라운 공간들이 펼쳐진다. 과거의 폐수처리장을 새롭게 단장해 만든 생태 정원은 시원하게 하늘로 뻗은 나무들과 수생식물, 금붕어와 개구리가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과거의 폐수처리 건물은 그리스나 로마의 광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근사한 콜로세움 야외공연장으로 거듭났다. 과거의 부품과 기물들을 버리지 않고 사람뿐 아니라 식물과 동물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예술적인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한 것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슨슨카페 역시 과거의 벽면을 보존해 외형은 80년대를 그대로 옮겨오면서 눈부신 햇빛이 들어오는 전면 유리벽으로 모던함을 자아내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잠시 익숙한 공간 속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커피와 다양한 베이커리, 간식 등을 즐길 수 있다. 직접 로스팅한 시그니처 커피와 카야잼 크로와상은 슨슨카페만의 특별한 별미다.
산속등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멍 때리며 앉아 숲을 바라봐도 좋고 예술가들의 작품세계에 침잠해도 좋다.
“큰 공간은 운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죠.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이곳만의 강점과 개성, 매력을 통해서 자생하고 자립할 수 있는 문화공간, 도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최미남 관장의 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정서부터 잊고 있던 기억들까지 새롭게 불러내며 미래를 지향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속 등대의 지향점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