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 생각하기

일단 ‘도전’하는 인생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밖으로 나간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건 하고 보는 나의 성격 덕분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무척 재미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어떤 분들은 “나도 젊었을 때 자전거를 타보는게 꿈이었다”라고 하고, 내가 색소폰을 불고 있으면 “나도 색소폰을 한번 불어보는 게 꿈이었다”라고 한다. 꿈을 꿈으로만 품고 있으면 진정 나의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만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엉덩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보면 어떨까?

글. 신계숙(배화여자대학교 조리학과 교수, <신계숙의 일단 하는 인생> 저자)

내 생애 첫 도전
최근에 사람들이 나를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저건 참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처음으로 재미있게 느껴진 일은 바로 ‘자전거 타기’였다. 지금이야 나이별로 자전거가 나오고 보조 바퀴까지 달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지만, 1970년대에는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커다란 자전거가 주를 이루었었다. 내 키가 아버지 자전거의 안장만큼 컸을 때 나의 관심은 늘 아버지의 자전거에 가 있었다. 내가 언젠가는 저걸 타고야 말겠다. 그 다짐이 며칠 동안 이어진 다음 드디어 거사에 나섰다.
행동강령 1조, 아버지 자전거를 끌고 신작로로 나가기였다. 키가 작고 팔이 짧아 왼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안장을 잡았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행동강령 2조, 왼쪽 페달에 오른발을 올리고 타기였다. 올려놓는 데까지는 겨우 성공했는데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아뿔싸, 핸들에서 손을 놓아버렸더니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넘어지면서 오른쪽 페달이 부러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이런 날 보고 아무 질책 없이 자전거를 수리한 뒤 다시 그 자리에 놓아주셨다.
그래서 그치지 않고 행동강령 3조, 안장에 올라타기를 실행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작은 키로 아버지 자전거 안장에 오르겠다는 것은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안장에 앉더라도 페달이 닿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최대한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여 페달을 발등으로 밑에서 감아서 올리는 작전을 써 드디어 나의 첫 도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환호를 하다가 그만 개울의 물에 빠지고 말았다. 시궁창에서 빠져나온 내 모습은 온통 진흙투성이였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어린이가 되었다.

내 생애 가장 무모한 도전
아버지 자전거에 도전한 지 오십 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오토바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57살에 오토바이 타기에 도전하는 것은 7살에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는 것보다도 더 무모한 도전이었다.
큰 오토바이를 타려면 2종 소형 면허를 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오토바이 학원에 등록했다. 면허를 따기 위해 일 년중 가장 뜨거운 달인 8월, 큰 오토바이를 타고 한 바퀴 가다가 한번 서고, 한 바퀴 가다가 한번 서는 과정을 하루에 한 시간씩 반복했다. 마치 오토바이 위에서 일보일배하는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오토바이 타는 것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기 때문에 된더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번의 도전으로 면허를 거머쥐고 바로 대리점에 가서 오토바이 한 대를 덜컥 계약했다. 그리고 대리점에 가서 오토바이와 첫 대면을 했을 때, 오토바이가 그렇게 클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나는 머리를 싸맸다. 오토바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도 길고 무게도 훨씬 더 무거웠다. 하지만 이미 계약한 이상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두려움은 가슴 밑으로 눌러놓은 뒤 시동을 걸고 엑셀을 당겼다.
웬걸? 1분 전 두려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건지, 오토바이는 탱크처럼 단단한 모양으로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와! 이렇게 시원할 수가! 두려움은 어느새 훌훌 날아가고, 시원함만이 남았다.

도전하는 데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일단 하는 ‘자세’
처음에 내가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만류했다. “네 나이가 몇인데 오토바이를 타려고 하느냐” 또는 “다리가 부러지면 붙지도 않을 나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이 볼때 50대 후반의 나이는 하던 것도 그만두어야 할 나이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인생이 앞으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이구나’,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은 오늘 당장 하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해보려는 마음을 먹고, 밖으로 나가서 무조건 시작하는 삶을 실천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전국을 여행하는 프로의 진행자로 TV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EBS <맛터사이클 다이 어리>를 통해 작년과 올해 국내의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곳이 많은 줄 몰랐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 푸르디푸른 나무들, 솜털보다 더 희고 부드러운 흰 구름,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 그리고 곳곳에서 만나는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좋은 분들은 나에게 잔잔한 기쁨과 힐링을 선사했다.
이 기쁨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도전’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바로 실행에 옮긴 도전들이 지금 이 순간 내게 행복을 선사한 것이다. 도전이 주는 달콤함을 만끽하는 이 순간, 나는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바로 실행에
옮긴 도전들이 지금 이 순간 내게
행복을 선사한 것이다. 도전이 주는
달콤함을 만끽하는 이 순간, 나는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