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 for you · 으뜸MG

신뢰와 혁신으로 지켜온 서민금융의 대들보

전북 신도새마을금고

전북 신도새마을금고 이치순 이사장(가운데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직원들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에 자리 잡고 있는 신도새마을금고는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금융의 터줏대감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건의 사건·사고 없이 지역의 굴곡진 시간을 신의와 성실로 주민들과 동행해왔다. 전북을 넘어 전국에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신도새마을금고를 방문해 보았다

글. 김수연 사진. 안지섭

으뜸MG 취재 영상 보기

40년이란 시간 속에서
다양한 부침을 겪어왔지만
신도새마을금고의 저력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의 신도새마을금고는
주요 사업마다 흑자경영을
달성하고 있으며 공제사업은
매년 100% 목표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이치순 이사장

황두연 전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서민금융 1번지
1981년 4월, 신도새마을금고는 팔복새마을금고라는 이름으로 발기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총 8인의 발기위원들은 다음 달, 창립총회를 열고 현판식 행사를 가짐으로써 팔복동 최초의 금융기관으로 첫발을 떼었다. 이들이 지역에 새마을금고를 만들어야겠다고 의기투합한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팔복동은 산업단지 지역으로 중소기업, 가내수공업 업체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노동집약형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인구 역시 2만 5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지요. 하지만 금융기관이 없었던 터라 소위 일수를 찍는 고리대금업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서민들의 금융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 거죠”
세월이 흘렀음에도 40년 전 발기인으로 참여했을 당시와 다름없는 에너지를 내뿜는 이치순 이사장이 신도새마을금고의 시작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팔복동 역시 전성기가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공장들이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로 빠져나가면서 사람들이 넘쳐났던 호시절이 지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는 8천 명대까지 떨어졌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역 경제와 호흡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운명 속에서 신도새마을금고에도 위기가 닥쳤다.
“이때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다른 지역에 지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토착민이 많이 사는 팔복동 외에 다른 지역에 지점을 내서 새로운 고객층을 창출하겠다는 목표였죠.”
그러나 이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황두연 전무가 회상한다. 지점을 낼만한 자리를 찾아 전주시를 돌기를 수십 번, 동종업계 거리제한을 따지다가 1m 때문에 매입했던 건물을 다시 팔아야 하는 일도 겪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회고하지만 당시만 해도 고민으로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던 날들이었다.

주인의식으로 이루어온 놀라운 성과들
40년이란 시간 속에서 다양한 부침을 겪어왔지만 신도새마을금고의 저력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의 신도새마을금고는 주요 사업마다 흑자경영을 달성하고 있으며 공제사업은 매년 100% 목표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새마을금고 대상, 새마을포장, 전북 새마을금고 경영평가대회 종합평가 우수상 등 그간 성취해온 금고와 이치순 이사장의 무수한 수상 이력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3천억 원이 넘는 자산과 100억 원이 넘는 적립금은 신도새마을금고가 지역사회와 회원들의 가장 든든한 경제 동반자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 성과들의 이면에는 신도새마을금고 직원들의 무수한 노력이 숨어 있다.
“저희 금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신과 공제입니다. 특히 공제사업이 시작되고 난 뒤 목표 달성에 실패해 본 적이 없어요. IMF 때도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100% 이상을 달성했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비결을 궁금해 하는데, 이치순 이사장과 황두연 전무는 이 모든 것이 “직원들 덕분”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직원들은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고, 직원들 끼리 서로 도와줍니다. 보통 회원님께 공제 상품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그러다 보면 다른 업무가 밀리게 되는데, 주변 직원들이 눈치껏 일을 처리해줍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공제 목표를 초과 달성한 직원은 지원해준 직원에게 실적을 나누기도 하고요.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답습되고 있습니다.”
신도새마을금고에는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업무에 있어 정확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출 심사가 1금융권보다 까다롭다고 불평을 들을 정도였다. 두 번째는 학연, 지연으로 엮여 있는 작은 지역사회라고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청탁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 원칙들이 기본이 되어 지금의 신도새마을금고를 만들 수 있었다.

원칙과 소신으로 더욱 건실한 금융을 만든다
신도새마을금고는 해마다 열리는 워크숍에서도 남다른 활력을 자아낸다. 임원들의 개입 없이 올해의 사업목표, 추진 방향을 직원들 스스로가 토론을 통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팀별로 체크카드, 전자금융, 공제 등의 목표를 정한뒤 어떤 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방법까지 확정한다. 이치순 이사장의 경영철학인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됨)’가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치순 이사장은 경험이 부족해서 실적이 저조한 직원들에게는 공제 가입 예정인 회원을 담당하게 하는 등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공의 경험이 있어야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이사장의 말에서 직원들의 동기유발과 역량 계발 또한 임원의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배려와 사랑이 만든 조직의 분위기는 신도새마을금고를 지역의 사랑방으로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 언제 방문해도 가족을 대하듯 반갑게 환영하는 직원들의 미소가 회원들로 하여금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언제든지 쉬어갈 수 있게 신도새마을금고의 문을 열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의 좀도리운동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노인과 소외계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각종 환원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학사업, 경로당 후원, 첫출산 축하금 지원, 자선단체 후원 등 복지의 사각지대까지 끌어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장이 지역사회 덕분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회원분들께서 저희를 믿고 거래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임직원 모두는 이 같은 신의에 상응하는 노력으로 회원 여러분들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신도새마을금고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변치 않는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더 큰 미래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배려와 사랑이 만든 조직의
분위기는 신도새마을금고를
지역의 사랑방으로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
언제 방문해도 가족을 대하듯
반갑게 환영하는 직원들의
미소가 회원들로 하여금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언제든지
쉬어갈 수 있게
신도새마을금고의
문을 열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