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Life · 한적한 그곳

선선한 봄바람 한 자락 따라
행복 찾는 나들잇길

산청 수선사

너도밤나무 목책 위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햇살이 고요한 물결에 스며들어 빛을 발한다. 겨우내 잠들었던 연(蓮) 줄기마다 푸르른 생기를 머금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대웅전 처마 끝 물고기 풍경의 맑은 공명이 얼어붙은 대지를 깨우며 널리 울려 퍼진다. 지리산 웅석봉의 너른 품에 자리한 산청 수선사가 기나긴 추위를 걷어내고 마침내 봄을 맞이했다.

글. 오민영 사진. 안지섭

고요한 공간이 선사하는 평온과 안정
소슬소슬 흘러드는 물길을 따라 돋아난 푸르른 새싹이 봄의 시작을 알린다. 7,000여 평에 이르는 곳곳을 부지런히 돌봐온 손이 말끔하게 닦인 마루의 나뭇결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수선사엔 어느 하나, 여경 스님의 자취가 깃들지 않은 구석이 없다. 혼자 지내는 암자를 살뜰히 보살핀 시간이 모여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사이에, 수선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힐링 명소로 성장했다. 지난 2020년엔 한국관광공사와 지역관광기관협의회가 선정한 언택트 관광 100선에 올랐다.
“30년 전에는 일대가 전부 다랑논이었어요. 인연이 닿으려고 했는지 현재 터에서 농사짓던 스님을 만나 수선사의 터전이 될 이 땅을 사게 되었죠. 그때부터 차곡차곡 다진 기반이 오늘날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공간이 되어 보람 있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선사(修禪寺)는 ‘진리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선을 닦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고려 말기에 방만해진 불교를 바로잡고자 나선 보조국사 지눌과 불제자가 속세에서 벗어나 수행하던 수선사(修禪社)에서 비롯했다. 그 고결한 의미를 이어가고자 끝 글자만 모일 사(社)에서 절 사(寺)로 달리한 것이다.
“수선사는 산세와의 조화를 해치지 않으면서 평온과 안정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완성하고자 했어요. 대웅전을 열여섯 평 규모로 소박하게 지은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크게 지었다면, 지금과 같이 정감 가는 분위기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오갈 곳 사라진 너도밤나무, 연못 위 하트로 다시 태어나다
시간을 두고 공들여 일일이 가꾼 만큼, 도처에는 구슬땀 어린 일화가 가득하다. 광산 개발을 위한 군락지의 대량 벌목으로 버려질 처지에 놓였던 너도밤나무가 연지(蓮池)를 에워싸는 목책으로 쓰일 수 있었던 것도 그중 하나다. 이제는 멀리 내려다보면 커다란 하트를 연상케 하는 모양 덕분에 큰 인기를 얻어 부부와 연인이 즐겨 찾는 포토존으로 급부상 중이다.
마당에 위치한 연못은 경주석으로 만든 탑을 등지고 바라보면 영락없이 마음 심(心)의 형상이다. 산에서 내려온 용천수가 섬세하게 쌓은 테두리 안에 퐁퐁 솟아오르는 풍경 앞에선 각자 믿는 바를 떠나 두 손을 모으고 새로운 희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에 걸린 <시절 인연(人蓮)> 목판 역시 직접 아로새긴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가족이나 친구와 추억을 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만, 연못가에 아늑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정자는 귀한 가죽나무를 다듬어 지은 작품으로, 소재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함부로 올라가지 않도록 하자.

수선사(修禪寺)는
‘진리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선을 닦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고려 말기에 방만해진 불교를
바로잡고자 나선 보조국사 지눌과 불제자가
속세에서 벗어나 수행하던
수선사(修禪社)에서 비롯했다.

한적한 초봄, 자연에서 찾아낸 행복
이곳에서 굳이 볼일이 없더라도 한 번쯤 ‘보고’ 가길 추천하는 데가 있으니 바로 화장실이다. 얼마나 깨끗한지 신발 벗고 들어가는데 과연 안방과 견줘도 아쉽지 않다면, 믿어지는가.
“뒷간을 부뚜막과 다름없이 대해야 합니다. <반야심경>에서 세상 만물은 불구부정(不垢不淨,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아니하다)고 가르치는데 왜 우리는 몸의 상수도를 귀하게 대접하면서 하수도를 천시할까요. 그건 인간이 정한 구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찰과 인근 지역을 오가는 누구나 들렀다 가도록 열어둔 이곳은 말 못 할 근심을 덜어주는 동시에, 내면까지 정화해준다. 머무는 동안 경건하게 이용하고 다음 차례에 물려주어야 선순환이 이루어 질것이다.
코로나 예방 수칙에 발맞춰 지금은 템플스테이를 운영하지 않지만, 한적한 초봄이 되면 푸르른 산새와 조화를 이루는 수선사의 또 다른 매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쉬어 가는 이와 나누는 가벼운 대화는 언제든 환영한다는 여경 스님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카페 <커피와 꽃자리>에 있다. 팥빙수, 수제 차, 커피 등을 판매한 수익금 일부는 소년소녀가장과 아동복지에 쓰고 있다.
“걱정거리가 많아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무슨 일이든 미리 당겨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충분해요. 여기 머무시는 동안만이라도 평온한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산청 수선사
• 위치 : 경남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154번길 102-23
• 이용 시간 : 오전 9시~오후 7시
• 입장료 : 무료
• 연락처 : 055-973-1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