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향 수 를 그 대 로 구 현 해 낸
진 한 막 걸 리 의 풍 미
정 답 게 어 우 러 져 술 빚 는 집 ,

가만히 귀 기울이면 톡톡 하는 소리가 들린다. 살아 숨쉬는 누룩이 커다란 항아리 안에서 찰기 어린 햅쌀과 맑고 깨끗한 물을 만나 천연 탄산을 터트리는 소리다. 사시사철 인내와 정성으로 빚어낸 손막걸리가 익어가는 복순도가에 입소문 듣고 찾아온 발걸음이 이어진다. 따뜻한 실내에서 마음 맞는 이와 둘러앉아 진한 탁주 한 잔에 정담 나누기 좋은 계절이 왔다.

오민영 사진 안지섭

젊은 세대 사이에선 돔페리뇽 막걸리로 통해

으레 생각하는 양조장의 건물과는 다르다. 볏짚으로 꼬아 놓은 새끼줄이 파사드(Facade, 전면)를 이루는 디자인은 세련미가 넘친다.
은은한 먹빛 외벽은 추수 마치고 쌓아둔 짚을 태운 재로 착색해 구현했다. 솜씨가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 쿠퍼유니온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김민규 공동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세월의 이치에 따른 변화와 순환의 의미를 담은 이 공간을 발효건축으로 정의해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부는 막걸리 생산의 부산물인 누룩 찌꺼기를 이용했고요. 중앙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보이는 숙성실은 자연 소재인 황토를 썼습니다. 이곳에 잠시만 머물러도 긴장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수려한 산세가 아늑히 품은 자리에 들어선 복순도가는 감도는 햇살과 바람마저 평온하다. 말 그대로 복(福)이 무탈하게 들어오는 집답다. 이곳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이 이름은 김 대표의 어머니 박복순 장인(匠人)에게서 따왔다. 아버지 김정식 대표는 뽀얀 막걸리의 비법은 박 장인이 해마다 손수 빚어낸 발효의 진수라고 전한다.
“말로는 표현 못 합니다. 마셔 봐야 알 수 있지요. 고급 샴페인과 같은 매력이 있다고 해서 20~30대 마니아층은 돔페리뇽 막걸리라고 부르더군요. 천연 탄산이 상쾌하게 입 안을 맴돌다가 목으로 넘어갈 즈음 감칠맛을 발산한다고 좋아하십니다.”

전 세계 58개국 정상을 사로잡은 궁극의 맛

하루아침에 일궈낸 성공이 없듯이 복순도가의 명성 뒤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신미영 강사가 전하는 박복순 장인의 이야기엔 그 지난한 시간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술을 많이 담가먹었지요. 박복순 장인님의 시댁에서도 집안 전통방식으로 가양주를 담그셨는데, 이게 동네에서는 아주 유명했다고 해요.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상품으로 만들어보고자 개발에 들어가셨죠. 시댁의 전통 가양주 비법을 구현하면서도 숙취를 줄이고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5년간 연구를 거듭하셨어요. 그 결과 지금의 막걸리가 탄생했습니다.”
지역의 햅쌀과 청정한 물이 들어간다. 첨가물이란 봄·가을로 인근 주민과 합심해 반죽하는 밀 누룩이 전부다. 여기에 열흘에서 2주에 달하는 기간을 기다려야 마침내 막걸리와 마주할 수 있다. 온전히 순리에 맡겨야 완성되는 술이다. 이러한 정성 덕분인지 안 먹어봤다면 모를까, 한 번 맛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이 쏟아진다. 2012년엔 서울핵안보정상회의 만찬주로 전 세계 58개국 정상을 사로잡았고, 2013년 청와대 재외공관장 만찬, 2015년 밀라노 세계박람회 한국관 개관 등의 행사에서 공식 건배주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더불어 농촌이 보유한 유·무형 자산에서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산업의 대표 사례로 선정되었다. 이 같은 성원에 힘입어 복순도가는 울주 본사를 중심으로 서울 노들섬, 부산 F1963 등에 직영점 세 군데를 열어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중이다.

막걸리 만들기 체험, 발효 화장품도 인기

복순도가에서는 우리 전통주의 저변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막걸리 제조 체험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채우는 강의와 실제 술을 담그는 체험, 근처 맛집에서의 점심 등으로 구성한 패키지는 인기 만점이다.
발효 전문 용기에 만든 막걸리는 통째로 가져갈 수 있다.
미용에 관심 있다면 복순도가가 선보이는 에센스, 로션 등 기초 화장품과 마스크팩을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천연 발효 성분인 피테라가 담뿍 담겨 있어 희고 고운 피부를 가꾸는 데 으뜸이다. 건조해지기 쉬운 동절기엔 틈틈이 발라주고 있다며 신미영 강사가 탄력 있는 손을 살짝 보여준다.
“복순도가는 막걸리로 유명하지만 탁주, 약주, 증류식 소주 등도 많이 찾으세요. 특히 올해 출시하는 과하주는 깔끔하고 청량해서 육류나 생선과 잘 어울리니 한번 맛보세요.”
한 무리의 방문객이 막걸리를 시음해 보더니 한 병을 주문한다. 일행이 신나게 한잔씩을 하는 동안, 술을 입에 댈 수 없는 운전자는 혼자 울상이다.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리운 맛이란 한 마디에 다음에는 꼭 대중교통으로 와야겠다고 한다. 마침 KTX 울산역이 가까이에 있어 소원은 쉽게 이뤄질 듯하다 .

김정식 복순도가 대표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미영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