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받은 감사한 마음을
다문화 청소년에게 희망으로 전해요

해밀학교 이사장·가수 인순이

풍부한 가창력과 넘치는 카리스마로 가수 인순이를 기억하는 대중에게 해밀학교 이사장 김인순은 조금 낯설 것이다. 그가 다문화 청소년이 당당히 세상에 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배움의 공간, 해밀학교를 세운지도 벌써 여덟 해가 지났다. 강원도 홍천의 해밀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학생들과 뛰놀기 편한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인자한 선생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민영 사진 안지섭

Q
노래를 통해 관객에게 무한 긍정 에너지를 전해주고 계신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안타깝게도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대가 크게 줄었어요. 안전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팬과 소통할 방법을 찾다가 ‘INSOONI 인순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열었어요. 계속 노래를 전하면서 저를 찾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연습 중이죠. 지난 11월 9일에는 다문화 청소년 교육 후원을 위한 비대면 가상 마라톤 대회 <2020 미라클365 버츄얼 하모니런>을 가수 션과 개최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국악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고, 얼굴 보기 힘들었던 지인을 만나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등 그동안 바빠서 못했던 일을 차근차근 하고 있어요. 해밀학교를 오가는 건 이젠 일상이 되었고요. 가수 인순이로는 데뷔 이래 가장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인간 김인순으로는 상당히 분주한 시간을 살고 있어요.

Q
평소 새마을금고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나요?
새마을금고는 우리 일상에 활력과 행복을 더하는 서민금융기관이라고 생각해요. 각 지역에서 주어진 역할뿐 아니라 사랑 나눔까지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새마을금고에서 전하는 희망과 위로 덕분에 세상이 한층 빛나니 매우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SBS FiL에서 방영하는 <으라차차 산골(Goal)축구단> 촬영에 해밀학교 이사장으로 함께한 가수 인순이

Q
이사장 김인순으로 지난 2013년 설립한 해밀학교가 올해 개교 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처음 학교를 세우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사춘기를 상당히 힘들게 견뎌냈어요. 철모르던 시절이었기에 다문화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어야 했죠. 사실 직접 해답을 모색해야지 누군가 알려 줄 수 없는 문제잖아요. 그 긴 터널을 지나 이제 안정을 찾고 나자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어린 친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더군요. 라디오에서 다문화 청소년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28%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만 몇 명이라도 좋으니 지원해주며 옆에서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점점 커져서 학교를 열 게 되었어요. 저는 노래만 해왔지 교육도 잘 모르고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거든요. 하지만 마치 내게 주어진 사명과 같이 홀린 듯 뛰어들게 되었어요. 소소하게 6명이 입학해서 5명이 성공적으로 졸업한 첫 해를 지나 지금은 43명의 학생과 오붓하게 어울리고 있답니다.

Q
해밀의 뜻이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청아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데요. 해밀학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우리 해밀학교는 다문화 학생 60%, 비 다문화 학생 40%로 구성된 중등과정의 기숙형 대안학교예요. 다문화 청소년들이 사회 바깥에 머물러 있는 외톨이가 아니라 엄연한 한국인으로 존재한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데 해밀학교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2017년에는 강원도 교육청에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정식으로 중학교 과정 학력을 인정받게 되었어요. 국가의 재정 지원은 없지만, 또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업을 수료하면 빛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죠. 학교 학비는 무료예요. 제가 온 힘을 다해 뒷받침하고 있어요. 하지만 교직원 월급날에는 아침부터 눈이 딱 떠질 정도로 절실할 때도 있어요. 특히 요즘처럼 무대가 아쉬운 시기엔 더욱이요. 내년에는 코로나19가 물러나고 지금의 고민이 자연스레 풀릴 만큼 상황이 나아지길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Q
해밀학교는 많은 후원자분들도 힘을 모아주고 계시죠?
500명에 달하는 후원자의 지원으로 30%를 채워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나머지 70%는 저와 학교의 몫이에요.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난달, 여러분은 어디서 얼만큼의 커피를 마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마 기억나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뇌리에 남지 않는 그 커피 한두 잔으로 다문화 청소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더욱 뜻깊은 쓰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앞으로 같은 뜻을 가진 후원자분들이 더 많이 함께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다문화
청소년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28%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만 몇 명이라도
좋으니 지원해주며 옆에서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Q
해밀학교에선 다양하고 재미있는 커리큘럼을 구성해 진행한다고요.
우선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낼 수 있는 수영은 필수고,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코딩은 기본이죠. 씨를 뿌려 식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농사 수업을 통해 인내와 부모님에 대한 감사도 느끼고요. 또, 1인 1악기 수업으로 기타, 드럼 등을 배워서 자유로운 밴드를 결성하기도 해요. 영어를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우리 학교만의 특성이에요. 아직 우리나라가 익숙지 않은 중도입국 학생을 대상으로 기초 한국어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강원도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었어요. 전국대회에선 금상도 수상했고요. 우리 학교는 무엇보다 자율적인 활동을 중시해요. 매주 1회 학생총회가 열리는데, 학교 규율을 스스로 수립하고 지키고 있어요. 초반엔 스마트폰 소지라는 이슈를 두고 많이 싸웠는데, 이젠 알아서 잘하니 기특해요. 그뿐인가요. 학교 축제도 학생이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교사와 격의 없이 어울려 추억을 만듭니다. 지난해엔 여기 홍천군 남면의 이름을 따서 ‘복면가왕’을 ‘남면가왕’으로 바꿔 지역 행사도 했는데 인기가 매우 높았어요.

Q
학교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데요, 앞으로 사회에 나아갈 해밀의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지요?
먼저 자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길 바라요. 당차게 다문화인이라는 걸 인정하고 이를 더 큰 장점으로 발전해나가는 거예요. 가끔은 흔들리는 날도 있겠지만, 마음의 굳은살이 박힐수록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또, 해밀학교는 무한 애프터서비스를 자랑한다고 농담으로 얘기하고는 하는데요. 졸업 후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거나 찾아오면 좋겠어요. 최근 제게 ‘쌤, 저 보름 있다 군대 가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친구가 학교를 방문했어요. 선생님과 후배를 만나고 와서는 군 복무하며 월급을 받으면 해밀학교 후원자가 되겠다고 넌지시 이야기하더군요. 평소 많은 후원자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바람대로 잘 자라줘 매우 뿌듯했습니다.

Q
가수로 데뷔한 지 어느덧 43주년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가수이자 모든 후배에게 존경받는 최고의 디바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데요. 노래를 통해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래 인기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은 분명 있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노력한 만큼 이뤄질 거라고 믿어요. 대중가수는 국민과 어우러져 슬픔은 반으로 나누고, 기쁨은 두 배로 끌어올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팬의 곁에서 변함없이 노래할 거고, 응원과 사랑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오랫동안 손잡고 정답게 걷는 좋은 친구로 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