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백투더(Back to the) 7080’!

마치 시대의 경계를 가로지른 듯 매표소 너머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비좁은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놀며,
삼삼오오 나눠 먹는 달달한 쫀드기 한입에 행복했던 바로 그 시절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근대사 체험박물관 전주난장에
첫발을 내딛는다. 동심의 세계에 가만히 묻어둔 추억이 어느새 곁에 다가와 정다운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오민영 사진 안지섭

25년간 수집한 반가운 추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어머, 이게 아직 남아 있었네?”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엄마의 감탄사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그마한 구멍가게 구석에서 발견한 보물은 선명한 비닐 패키지의 말표 빨랫비누다. 이 브랜드가 한때 세탁뿐 아니라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꾸는 비결로 이름 날렸단 사실을 요즘 세대는 알고 있을까.
그 사이 한쪽에 가지런히 진열한 건빵, 라면땅, 옥수수 브이콘 등 가지각색 주전부리는 학생 무리에 둘러싸여 한창 인기몰이 중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이라는 생소한 단어 옆에 붙은 숫자가 믿기 어려운지 까르르 웃음꽃이 핀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과거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전주난장의 매력이다.
“약 800평 규모의 집이 있던 자리를 사서 터를 닦았습니다. 전시품이요? 워낙 많아서 다 셀 수 없어요.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직접 즐기는 박물관을 꿈꾸며 25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오늘날에 이르렀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하는 조문규 대표의 손은 쉴 새가 없다. 방심하면 쌓이기 마련인 먼지를 깨끗이 털어내고, 가게 앞에 채소와 과일을 담뿍 늘어놓는다. 그야말로 난장(일정한 장날 외에 임시로 특별히 터놓은 시장)을 꾸미는 과정이다. 지난 2019년 3월 말, 첫 선을 보일 당시엔 옛날 쌀엿을 시식용으로 목판 가득 담아뒀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아쉽게 접어야 했다.

 

최신 유행 머리 스타일 뽐내러 고고장으로 고고(Go)!

전주난장은 가볍게 돌아보는 데만 두 시간 남짓이다. 자연히 맘 놓고 놀려면 그 이상은 족히 걸린다. ‘내릴 분 안 계시면 오라이!’라는 안내양의 목소리와 함께 뿌연 흙바람 떨치며 달려갈 듯한 버스를 뒤로 하고, 가장 처음 마주한 장소는 ‘어린 시절’ 테마구역이다. 살짝 들여다 보니 난로 위 양은도시락에 군침 삼키느라 정작 공부는 뒷전인 개구쟁이 국민학생 네 명이 재미난 포즈로 수업을 하고 있다. 벽 하나를 두고 옆 교실에선 상업고등학교 언니·누나가 주판과 타자기를 익히고 있다. 제법 상을 타왔는지 창가에 트로피가 그득하다.
쪽문을 거쳐 장난감 가게, 문구점, 책방, 철물점 등이 즐비한 거리의 끝에 서니 ‘엄마 시절’ 테마구역이 등장한다. 비록 넉넉하진 않았으나 부지런히 꾸려낸 살림살이에서 따스한 정이 묻어난다. 옷감 구김살을 반드럽게 펴는 다듬잇돌 앞에 앉아 방망이를 두드려 본다. 도닥도닥, 맑은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청춘과 사랑/놀이문화’ 테마구역은 관람객이 좋아하는 공간 1위다. 앉자마자 삐걱삐걱 올려주는 미장원 반자동의자 위에 앉아 당시의 최신 유행 스타일로 머리를 다듬는 상상을 더해본다. 장수우체국 옆 만화방의 유혹에 잠시 멈칫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비디오방에 들러 신작 구경하고 오락실에서 게임 한 판 마친 다음, 최종 목적지인 ‘고고장’으로 향한다. 마침 신나는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저기 몇 명은 이미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다. 디제이(DJ)처럼 레코드판을 돌리며 춤추는 동안, 열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가족, 연인, 친구 등과 손잡고 거니는 시간여행

‘청사초롱길’을 지나 한약방이 있는 코너 옆 ‘약속다방’에서 일행을 기다린다. 해묵은 잡지를 보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가족, 연인, 친구 등과 손잡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도착한 철길 건너 ‘기차역’에선 신파극 이별 장면처럼 손수건을 흔들어보다 이내 폭소가 터진다.
‘군대시절’ 테마구역은 아빠의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곳이다. 나라 지키는 자부심으로 견딘 병영생활 고생담이 이어지자 막내아들이 못 참겠는지 말년병장처럼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건들거린다. 앞으로 10년은 족히 훗날의 일이라며 코를 찡긋하는 동그란 얼굴이 짐짓 익살스럽다.
조문규 대표가 꼭 들렀다 가라고 추천한 ‘물레방아 방앗간’엔 진짜 쌀이 정미 과정에 맞춰 돌아가고 있다. 기계 앞엔 절구와 공이가 있어 달 토끼처럼 쿵더쿵 찧는 포즈로 사진 찍기 좋다. 붕어빵 노점, 튀밥집, 도장집, 주막 등이 즐비한 읍내 상점가 근처 110년 역사의 우물은 여전히 차가운 물이 퐁퐁 솟아난다. 양동이에 생수병을 담갔다가 끌어올리면 늦더위마저 물러가는 냉기가 오롯이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도달한 ‘군산극장’은 다양한 흥밋거리 집합소다. 맨 아래층이 극장과 저자를 실감 나게 재현했다면, 그 위엔 여럿이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전통 활, 농구 기계, 탁구대 등을 구비했다. 뜨끈한 국밥 한 대접 먹고 가야 할 분위기를 갖춘 3층 화개장터, 4층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전망대에선 오늘 한나절 실컷 즐기던 난장판이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