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마다 듣는 친척 어른들의 불편한 질문
When과 Why에 다르게 대처하라!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아직 진학, 취업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명절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픔을 후벼 파는 친척 어른들의 질문 세례 때문이다. 그분들이 무심코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에
대답하는 것은 그야말로 괴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더욱 짜증스러운 것은 기껏 대답을 해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만 툭 내뱉고 대화를 끝내 버리니 더 당황스럽다.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일러스트 이정윤

질문에 따라 대답을 생각할 시간적 길이가 다르다

30대 중반의 한 후배는 친척 어른들의 이런 질문에 “솔직히 그럴 때면 어른인데도 무례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례(無禮)가 무엇이겠는가.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친척이고 어른이라도 그 태도와 말에 예의가 없으면 마땅히 무례하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무례함은 질문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어떤 질문이든 그것에 대한 답변에 필요한 시간적 길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일 점심 때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단 몇 초 혹은 몇십 초만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 결혼할 거니’ 혹은 ‘직장은 아직 안 잡았니’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은 수많은 관련 이야기들을 해야 하며 따라서 몇 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질문한 사람이 대답하는 쪽에서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도 전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대답하는 말을 자르고 전혀 다른 자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문제는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대답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다. 실제로 꽤 민감한 사안이라도 상대방에게 대답할 시간을 충분히 줄 경우에는 무례함이 최소화된다. 심지어 상담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심리 상담을 처음 받은 분들이 많이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중단 없이 해본 경험은 난생 처음입니다.’ 그래서 잘 훈련된 상담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최대한 들어준다.

When에 대한 물음엔 When에 대한 답만 하면 된다

이제 왜 친척들의 질문이 힘들게 하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상대방은 어른이고 친척이다. 나에게 대답할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럴 때 대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분들의 무례한 질문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제는 달라도 문법상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언제’나 ‘아직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대학 가냐’, ‘아직도 결혼 안 하니’, ‘언제 아이를 낳을 거니’, ‘아직 취직 못 했니’ 등과 같이 말이다. 영어로는 when, 그 when에 대한 대답을 하면 된다. when에 대한 준비나 내용이 없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네~ 이제 막 준비를 시작했어요”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제 막 시작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고 그러니 질문하는 상대방에게 이전의 많은 일들과 자초지종을 얘기할 의무나 책임 그리고 분량이 상당히 감소한다. 이럴 경우 ‘아, 그러니?’라고 싱거운 입맛을 다시며 상대방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어차피 그게 본 관심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질문에 담긴 When과 Why의 의도를 파악하자

이렇게 걱정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랬다가 다음 명절 때 같은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지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분들은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에 대해서 평소에 많이 알아두었거나 관심이 많은 분들은 when으로 물어보지 않고 why로 물어본다. 그리고 why를 진정으로 포함시켜 질문하는 친척 어른은 꽤 시간을 들여 대답을 해도 기꺼이 들어주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 하거나 진심으로 걱정과 위로를 하실 분들이다.
이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간다면 스스로를 되돌아보시라. 상대방의 대답에 별 관심이 없을 때 어떻게 질문하는가. when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기어코 대답을 듣고 싶거나 충분히 시간을 들여 대화를 해볼 의향이 있는 경우에는 why를 중심으로 질문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인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갔을 때 자고 있던 아내가 아침에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긴장의 끈을 늦추기도 하고 바싹 겁을 먹기도 한다. 바로, “언제 들어왔어?”와 “왜 늦게 들어왔어?”다. 질문의 분위기가 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대충 얼버무려도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지만 후자의 질문을 받으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요약해보자. 그분들의 불쾌한 질문은 when이다. 그러니 when은 이제 막 시작됐다라고 하자. 하지만 why를 묻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한 마음으로 대답해 드리자. 이래저래 인간은 참으로 오묘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