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과 생활에 있어서
공간의 의미

[ P l a c e ]

많은 사람들이 빠지곤 하는 공간에 관한 상념이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거처로 되돌아가는 늦은 퇴근길,
어째서 저토록 무수히 빛나는 도시의 불빛 속에 자신의 불빛이 하나 없는지, 그 불빛 하나 자랑스레 혹은 안심하고
담아둘 내 집 하나 없는지, 그런 생각들은 인생의 어느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공간은 우리의 삶 속에서 쟁취해야 할 대상, 거래 가능한 상품, 저금리 시대의 매력적인 투자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생 여정의 목적지 등 소유해야만 하는 무엇으로 여겨진다.

글 이중용(건축편집자)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 공간

공간의 의미는 과연 부동산에만 한정될까?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공간에 관해 자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공간이란 뭘까? 공간을 구별해서 생각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시간 역시 모호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감각적 구분을 할 수 있다. 반면에 공간을 하나의 대상으로 포착하려고 할 때, 도대체 어느 부분을 지목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알듯 공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이기 때문이다.
뼈와 살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당신의 몸도 표면의 주요한 아홉개 구멍으로 연결된 다채로운 공간들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70%의 수분을 컨트롤하는 무수한 공간들이 제각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삶이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기준으로 제곱미터의 2차원 면적 위를 채우고 세제곱미터의 3차원으로 다뤄지는 현실 세계에서의 공간과 달리 ‘어디에나 있는’ 실재의 공간 자체는 항상 부수적으로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의 최소 조건, 숨

공간은 인간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삶의 조건처럼 문득문득 현실에서 일깨워진다. 쉬운 예로, 건물에 화재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불도 피해야 하지만 연기도 피해야 한다.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인체 시스템이 산소 대신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면 단기간에 망가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산소가 없는 공간의 경우 인간에게 평온한 생활이 제공될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간에게 있어 공간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주공간과 해저공간은 지구의 땅 위 공간과 다르게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한한 공간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에게 유의미한 공간 역시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장치들 내부에 한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위한 공간의 최소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건물의 형태와 재료에 속박된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공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마음 안에 공간이 없다면, 세계 최고의 공간 그 어디에 머무른다고 해도 결국
숨을 쉬기 위한 또 다른 세계의 공간에 대한 갈증만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자의 공간을 사는 시대

가급적 마스크를 통해서만 숨을 쉬도록 허용되는 코로나 시대 또한 ‘숨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섬세한 인식을 요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2m 간격(공간)이 권장되며 대면의 순간에서조차 접촉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이전에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적 거리(공간)두기가 보편적인 지침으로 받아들여졌고, 비대면과 언택트라는 용어가 삶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던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화상회의 시스템이 있으니까, 총알배송 유통망이 있으니까, 근거리 생활 소비를 위한 전국 4만여개의 편의점이 있으니까, 매일 같이 쌓이는 유튜브 콘텐츠가 있으니까, 그 외 여러 가지로 상황을 긍정하게 하는 요인들로 인해 혼자 쉬는 숨도 무조건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게 됐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코로나 블루을 겪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이란 단지 기도 호흡만으로 살아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은 비물리적인 조건으로 대체 가능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마음도 함께 숨 쉴 수 있을 때에만 인간은 안정될 수 있다.

인간의 공간은 정성스런 숨으로 채워져야 한다

2020년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던 인종차별의 현장에서 희생자인 조지 플로이드가 남긴 말은 “I can’t breathe”였다. 개인의 신념에 반하는 것들에 가해지는 살의를 품은 폭력이 공의로 포장됨으로써, 세계는 신념의 숫자만큼 산산조각이 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그만큼 한정된다. 특정한 이유만 있다면 인간이 인간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숨 쉴 수 없게 한다. 사람들이 함께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할 공동의 공간을 채우는 공기는, 산소이기도 하면서 마음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면서 스스로 차별하지 않는 습관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약간의 언어유희를 섞어 보자면, ‘숨’이라는 말에서 ‘sum’, 그러니까 프랑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의 너무나도 유명한 명제, ‘Cogito ergo sum(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sum = I am)’라는 단어의 의미를 함께 엮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쉬는 만큼 존재하고 숨을 내쉬는 만큼 존재시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공간은 정성스레 들이쉬고 또한 정성스레 내쉬는 숨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것은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한편, 타인을 오롯이 타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심성을 연마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간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만약 공간을 부동산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거기에는 그 나름의 유용한 해법들이 있을 것이다. 면적과 체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동선과 시선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위계와 분위기를 편안하게 구성하는 등의 기본 전략에 근거하여 개별 상황에 맞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간을 건축의 관점으로 본다면, 하나의 공간에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하는 계획은 한때의 유행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의 흐름과 사용자의 변화를 담지 못한 채 정해진 용도와 양식만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은 다양한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빛난다.
건물의 형태와 재료에 속박된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공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마음 안에 공간이 없다면, 세계 최고의 공간 그 어디에 머무른다고 해도 결국 숨을 쉬기 위한 또 다른 세계의 공간에 대한 갈증만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해도, 마음이 지옥이면 자신이 머무는 공간도 지옥으로 수렴되고 마음이 천국이면 자신이 머무는 공간도 천국에 가까워질 수 있다. 당신 바로 앞 그리고 옆에 있는 그 사람에 대한 배려, 즉 마음 씀이야말로 당신의 공간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인간의 삶과 생활에 있어서
공간의 의미

[ P l a c e ]

많은 사람들이 빠지곤 하는 공간에 관한 상념이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거처로 되돌아가는 늦은 퇴근길, 어째서 저토록 무수히 빛나는 도시의 불빛 속에 자신의 불빛이 하나 없는지, 그 불빛 하나 자랑스레 혹은 안심하고 담아둘 내 집 하나 없는지, 그런 생각들은 인생의 어느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공간은 우리의 삶 속에서 쟁취해야 할 대상, 거래 가능한 상품, 저금리 시대의 매력적인 투자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생 여정의 목적지 등 소유해야만 하는 무엇으로 여겨진다.

글 이중용(건축편집자)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 공간

공간의 의미는 과연 부동산에만 한정될까?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공간에 관해 자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공간이란 뭘까? 공간을 구별해서 생각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시간 역시 모호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감각적 구분을 할 수 있다. 반면에 공간을 하나의 대상으로 포착하려고 할 때, 도대체 어느 부분을 지목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알듯 공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이기 때문이다.
뼈와 살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당신의 몸도 표면의 주요한 아홉개 구멍으로 연결된 다채로운 공간들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70%의 수분을 컨트롤하는 무수한 공간들이 제각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삶이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기준으로 제곱미터의 2차원 면적 위를 채우고 세제곱미터의 3차원으로 다뤄지는 현실 세계에서의 공간과 달리 ‘어디에나 있는’ 실재의 공간 자체는 항상 부수적으로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의 최소 조건, 숨

공간은 인간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삶의 조건처럼 문득문득 현실에서 일깨워진다. 쉬운 예로, 건물에 화재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불도 피해야 하지만 연기도 피해야 한다.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인체 시스템이 산소 대신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면 단기간에 망가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산소가 없는 공간의 경우 인간에게 평온한 생활이 제공될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간에게 있어 공간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주공간과 해저공간은 지구의 땅 위 공간과 다르게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한한 공간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에게 유의미한 공간 역시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장치들 내부에 한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위한 공간의 최소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건물의 형태와 재료에 속박된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공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마음 안에 공간이 없다면, 세계 최고의 공간 그 어디에 머무른다고 해도 결국
숨을 쉬기 위한 또 다른 세계의 공간에 대한 갈증만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자의 공간을 사는 시대

가급적 마스크를 통해서만 숨을 쉬도록 허용되는 코로나 시대 또한 ‘숨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섬세한 인식을 요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2m 간격(공간)이 권장되며 대면의 순간에서조차 접촉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이전에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적 거리(공간)두기가 보편적인 지침으로 받아들여졌고, 비대면과 언택트라는 용어가 삶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던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화상회의 시스템이 있으니까, 총알배송 유통망이 있으니까, 근거리 생활 소비를 위한 전국 4만여개의 편의점이 있으니까, 매일 같이 쌓이는 유튜브 콘텐츠가 있으니까, 그 외 여러 가지로 상황을 긍정하게 하는 요인들로 인해 혼자 쉬는 숨도 무조건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게 됐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코로나 블루을 겪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이란 단지 기도 호흡만으로 살아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은 비물리적인 조건으로 대체 가능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마음도 함께 숨 쉴 수 있을 때에만 인간은 안정될 수 있다.

인간의 공간은 정성스런 숨으로 채워져야 한다

2020년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던 인종차별의 현장에서 희생자인 조지 플로이드가 남긴 말은 “I can’t breathe”였다. 개인의 신념에 반하는 것들에 가해지는 살의를 품은 폭력이 공의로 포장됨으로써, 세계는 신념의 숫자만큼 산산조각이 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그만큼 한정된다. 특정한 이유만 있다면 인간이 인간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숨 쉴 수 없게 한다. 사람들이 함께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할 공동의 공간을 채우는 공기는, 산소이기도 하면서 마음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면서 스스로 차별하지 않는 습관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약간의 언어유희를 섞어 보자면, ‘숨’이라는 말에서 ‘sum’, 그러니까 프랑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의 너무나도 유명한 명제, ‘Cogito ergo sum(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sum = I am)’라는 단어의 의미를 함께 엮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쉬는 만큼 존재하고 숨을 내쉬는 만큼 존재시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공간은 정성스레 들이쉬고 또한 정성스레 내쉬는 숨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것은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한편, 타인을 오롯이 타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심성을 연마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간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만약 공간을 부동산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거기에는 그 나름의 유용한 해법들이 있을 것이다. 면적과 체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동선과 시선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위계와 분위기를 편안하게 구성하는 등의 기본 전략에 근거하여 개별 상황에 맞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간을 건축의 관점으로 본다면, 하나의 공간에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하는 계획은 한때의 유행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의 흐름과 사용자의 변화를 담지 못한 채 정해진 용도와 양식만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은 다양한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빛난다.
건물의 형태와 재료에 속박된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공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마음 안에 공간이 없다면, 세계 최고의 공간 그 어디에 머무른다고 해도 결국 숨을 쉬기 위한 또 다른 세계의 공간에 대한 갈증만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해도, 마음이 지옥이면 자신이 머무는 공간도 지옥으로 수렴되고 마음이 천국이면 자신이 머무는 공간도 천국에 가까워질 수 있다. 당신 바로 앞 그리고 옆에 있는 그 사람에 대한 배려, 즉 마음 씀이야말로 당신의 공간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