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J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이 잘못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남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질투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여기에는 질투와 유사성이라는 두 요인 간에 굉장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그 함수관계를 지금부터 알아보자.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일러스트 이정윤

즐겁지 않은 삶 속에서 질투가 피어난다

농부 한 사람이 혼자 힘들게 밭을 갈고 있다. 소가 있으면 훨씬 쉽게 일을 하겠지만 가난해서 소를 산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렇게 힘겹게 일을 하는 중 농부는 밭에서 마법 램프를 하나 줍게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램프를 만지작거렸더니 신령이 홀연히 나타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농부의 소원이 어처구니가 없다. “이웃 농부는 소를 한 마리 갖고 있습니다. 그 소가 지금 당장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한 러시아 우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사람에게 있어서 질투가 얼마나 어리석으면서도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질투를 하는 첫 번째 전제조건은 동질감에 있다. 즉 자신의 처지와 상황이 비슷한 사람한테 느끼는 것이 질투다. 먼 나라 사람이나 옛날 사람 혹은 나와 신분이나 처지가 눈에 띄게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도공은 도공을 미워하고, 목수는 목수를 미워한다. 걸인은 걸인을 시기하고, 시인은 시인을 질투한다”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의 서양편쯤 되는 말이다.
왜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질투를 하는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같은 것을 두고 경쟁한다’는 이해관계에 대한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적으로도 가정이 되고 있다. 가까이 살면 같은 지역에서 나는 농작물을 나눠 먹어야 하며 같은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무언가가 생기면 크기가 정해져있는 빵조각이 더 작아져서 나에게 온다는 가정을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니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운명공동체인 직계 가족과 달리 사촌은 그 가정을 적용하기 딱 좋은 대상이 된 것뿐이다.
질투의 두 번째 조건은 즐겁지 않은 삶에 있다. 내가 즐겁지 않아 일과 삶에 활력이 없는 와중에 주위의 가까운 사람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행복하면 질투가 쉽게 일어난다. 나의 상태와 똑같이 만들고 싶은 것이다. 앞의 그 러시아 농부처럼 말이다. 특히 이때 많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비교’다. 내가 좋은 집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이 즐겁지 않으면 이웃의 더 크고 좋은 집과 자동차를 비교하며 우열감, 즉 질투를 느낀다.
자, 그렇다면 질투가 최고조가 될 상황을 종합해 보자. 즐거움이 없으면서 동질감은 강하고 비교당하고 있을 때다. 이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가지느냐보다 무언가를 잘하고 있는 가까운 타인을 끌어내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부터 찾자

그렇다면 이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절묘한 대답을 찾은 연구자가 있다. 캐나다 알베르타대학의 제니퍼 아르고(Jennifer J. Argo) 교수 연구진이 그 주인공이다.1) 사실 이들의 연구는 소비자 심리 연구에 더 가깝다.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옷, 가방, 그리고 액세서리 같이 다양한 제품들에 대한 선호도를 물었다. 이것들은 마네킹에 입혀져 있거나 들려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됐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마네킹에 전시된 상품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마네킹을 보면서 위축돼 제품까지도 싫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조금만 확장해서 적용해 보면 실생활에서 수없이 관찰된다. 외모나 성품에서 뛰어난 사람을 질투해 그 사람의 무관한 능력을 폄하하고 싶은 유혹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느끼는가.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진의 재치가 돋보이는 건 지금부터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마네킹의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게끔 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다양한 심리학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자기가치 확인(self-affirmation)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자기가치 확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며 왜 그것이 중요한가를 말하게 하는 절차를 뜻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절차만으로도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성을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게 함으로써 마음속의 비교라는 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가치를 확인해주는 대화가 없었는데도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네킹의 얼굴, 머리카락, 머리를 제거한 경우다. 마네킹의 모습을 엉망으로 만드니 그제야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과 질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수시로 되새겨 주지 않으면 사촌의 땅에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사촌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모습까지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회사의 CEO에게 항상 이렇게 당부드린다.
“자녀나 직원이 가까운 사람의 행복에 질투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게 하려면 늘 비교하십시오. 만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느끼게 해주십시오.”
사촌이 땅을 사는 것에 배 아파하는 못난 심보를 가지는 이유의 상당부분을 부모님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 Jennifer J Argo, Darren W Dahl; Standards of Beauty:
The Impact of Mannequins in the Retail Context,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Volume 44, Issue 5, 1 February 2018, Pages 974–990.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J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이 잘못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남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질투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여기에는 질투와 유사성이라는 두 요인 간에 굉장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그 함수관계를 지금부터 알아보자.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일러스트 이정윤

즐겁지 않은 삶 속에서 질투가 피어난다

농부 한 사람이 혼자 힘들게 밭을 갈고 있다. 소가 있으면 훨씬 쉽게 일을 하겠지만 가난해서 소를 산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렇게 힘겹게 일을 하는 중 농부는 밭에서 마법 램프를 하나 줍게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램프를 만지작거렸더니 신령이 홀연히 나타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농부의 소원이 어처구니가 없다. “이웃 농부는 소를 한 마리 갖고 있습니다. 그 소가 지금 당장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한 러시아 우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사람에게 있어서 질투가 얼마나 어리석으면서도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질투를 하는 첫 번째 전제조건은 동질감에 있다. 즉 자신의 처지와 상황이 비슷한 사람한테 느끼는 것이 질투다. 먼 나라 사람이나 옛날 사람 혹은 나와 신분이나 처지가 눈에 띄게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도공은 도공을 미워하고, 목수는 목수를 미워한다. 걸인은 걸인을 시기하고, 시인은 시인을 질투한다”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의 서양편쯤 되는 말이다.
왜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질투를 하는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같은 것을 두고 경쟁한다’는 이해관계에 대한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적으로도 가정이 되고 있다. 가까이 살면 같은 지역에서 나는 농작물을 나눠 먹어야 하며 같은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무언가가 생기면 크기가 정해져있는 빵조각이 더 작아져서 나에게 온다는 가정을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니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운명공동체인 직계 가족과 달리 사촌은 그 가정을 적용하기 딱 좋은 대상이 된 것뿐이다.
질투의 두 번째 조건은 즐겁지 않은 삶에 있다. 내가 즐겁지 않아 일과 삶에 활력이 없는 와중에 주위의 가까운 사람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행복하면 질투가 쉽게 일어난다. 나의 상태와 똑같이 만들고 싶은 것이다. 앞의 그 러시아 농부처럼 말이다. 특히 이때 많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비교’다. 내가 좋은 집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이 즐겁지 않으면 이웃의 더 크고 좋은 집과 자동차를 비교하며 우열감, 즉 질투를 느낀다.
자, 그렇다면 질투가 최고조가 될 상황을 종합해 보자. 즐거움이 없으면서 동질감은 강하고 비교당하고 있을 때다. 이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가지느냐보다 무언가를 잘하고 있는 가까운 타인을 끌어내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부터 찾자

그렇다면 이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절묘한 대답을 찾은 연구자가 있다. 캐나다 알베르타대학의 제니퍼 아르고(Jennifer J. Argo) 교수 연구진이 그 주인공이다.1) 사실 이들의 연구는 소비자 심리 연구에 더 가깝다.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옷, 가방, 그리고 액세서리 같이 다양한 제품들에 대한 선호도를 물었다. 이것들은 마네킹에 입혀져 있거나 들려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됐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마네킹에 전시된 상품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마네킹을 보면서 위축돼 제품까지도 싫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조금만 확장해서 적용해 보면 실생활에서 수없이 관찰된다. 외모나 성품에서 뛰어난 사람을 질투해 그 사람의 무관한 능력을 폄하하고 싶은 유혹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느끼는가.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진의 재치가 돋보이는 건 지금부터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마네킹의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게끔 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다양한 심리학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자기가치 확인(self-affirmation)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자기가치 확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며 왜 그것이 중요한가를 말하게 하는 절차를 뜻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절차만으로도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성을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게 함으로써 마음속의 비교라는 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가치를 확인해주는 대화가 없었는데도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네킹의 얼굴, 머리카락, 머리를 제거한 경우다. 마네킹의 모습을 엉망으로 만드니 그제야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과 질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수시로 되새겨 주지 않으면 사촌의 땅에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사촌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모습까지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회사의 CEO에게 항상 이렇게 당부드린다.
“자녀나 직원이 가까운 사람의 행복에 질투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게 하려면 늘 비교하십시오. 만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느끼게 해주십시오.”
사촌이 땅을 사는 것에 배 아파하는 못난 심보를 가지는 이유의 상당부분을 부모님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 Jennifer J Argo, Darren W Dahl; Standards of Beauty:
The Impact of Mannequins in the Retail Context,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Volume 44, Issue 5, 1 February 2018, Pages 974–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