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로 떠나는
과거로의
감성여행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근대문화유산이 살아있는 도시 군산에는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철길마을이 아직 남아있다. 좁은 선로 양쪽에 옹기종기 늘어선 집들 사이로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던 이색 풍경은 사라졌지만, 자박자박 자갈소리 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편집실 사진 안지섭

기차가 지날 때면 역무원이 호루라기를 불던 진풍경

경암동 철길마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산은 서쪽으로는 바다가 있고, 동·남쪽으로는 호남평야가 이어진 지역적 특색 때문에, 우리의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하여 철길과 포장도로를 개발했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경암동 역시 바다였던 곳을 일본인들이 공장을 짓기 위해 매립했고, 신문용지를 나르기 위한 용도로 신문제지회사와 군산역을 연결하는 철로를 만들었다. 해방 후에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철로 주변으로 갈 곳 잃은 실향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1970년대에는 철길 주변에 마을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기차는 하루 2번 지나다녔는데, 평소 주민들은 철길에 빨래와 고추를 말리고 화분이나 세간살이를 놓아두었다. 이런 마을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기차가 지나갈 때쯤이면 경적소리와 함께 역무원 3명 정도가 나와 호루라기를 불며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알렸고, 주민들은 재빠르게 나와 널어두었던 빨래나 세간살이들을 걷어 갔다고 한다. 집 바로 옆을 지나가야 하니 기차는 시속 10km 정도로 서행했다고 하지만 소음도 크고 위험하여 사람살기에 좋은 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2008년을 마지막으로 기차는 운행되지 않지만 마을을 관통하는 기찻길은 사라지지 않고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났다.

1970년대 교복, 교련복 입고 추억 속으로

아파트와 도로변 사이에 남아있는 철길마을을 보고 누군가는 안타깝다고 말한다. 아픈 역사이지만 우리네 삶이 담겨 있고, 실향민들에게는 위로를 주었던 이곳이 관광지로 변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만약 관광지로 남지 않았다면 이곳 마을은 이미 철거되어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기차가 다니지 않아 녹슬어 버린 철길과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에 철길마을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철길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멈춰버린 작은 기차 1량이 철길마을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 앞으로 철로에 귀를 대거나 기차를 가리키는 조형물이 반겨준다. 조형물과 똑같이 포즈를 취하며 기차 앞에서 촬영하는 건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1960~70년대를 살았던 중년 부부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찾아오고, 그 시절을 살지 않은 20대는 호기심으로 찾아온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와 한가인이 입었던 1970년대 교복을 대여해주는 곳이 군데군데 있어, 선도부 완장에 옛날 책가방까지 소품으로 들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중년들은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고 젊은 층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신나한다.

기찻길로 떠나는
과거로의
감성여행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근대문화유산이 살아있는 도시 군산에는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철길마을이 아직 남아있다. 좁은 선로 양쪽에 옹기종기 늘어선 집들 사이로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던 이색 풍경은 사라졌지만, 자박자박 자갈소리 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편집실 사진 안지섭

기차가 지날 때면 역무원이 호루라기를 불던 진풍경

경암동 철길마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산은 서쪽으로는 바다가 있고, 동·남쪽으로는 호남평야가 이어진 지역적 특색 때문에, 우리의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하여 철길과 포장도로를 개발했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경암동 역시 바다였던 곳을 일본인들이 공장을 짓기 위해 매립했고, 신문용지를 나르기 위한 용도로 신문제지회사와 군산역을 연결하는 철로를 만들었다. 해방 후에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철로 주변으로 갈 곳 잃은 실향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1970년대에는 철길 주변에 마을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기차는 하루 2번 지나다녔는데, 평소 주민들은 철길에 빨래와 고추를 말리고 화분이나 세간살이를 놓아두었다. 이런 마을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기차가 지나갈 때쯤이면 경적소리와 함께 역무원 3명 정도가 나와 호루라기를 불며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알렸고, 주민들은 재빠르게 나와 널어두었던 빨래나 세간살이들을 걷어 갔다고 한다. 집 바로 옆을 지나가야 하니 기차는 시속 10km 정도로 서행했다고 하지만 소음도 크고 위험하여 사람살기에 좋은 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2008년을 마지막으로 기차는 운행되지 않지만 마을을 관통하는 기찻길은 사라지지 않고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났다.

1970년대 교복, 교련복 입고 추억 속으로

아파트와 도로변 사이에 남아있는 철길마을을 보고 누군가는 안타깝다고 말한다. 아픈 역사이지만 우리네 삶이 담겨 있고, 실향민들에게는 위로를 주었던 이곳이 관광지로 변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만약 관광지로 남지 않았다면 이곳 마을은 이미 철거되어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기차가 다니지 않아 녹슬어 버린 철길과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에 철길마을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철길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멈춰버린 작은 기차 1량이 철길마을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 앞으로 철로에 귀를 대거나 기차를 가리키는 조형물이 반겨준다. 조형물과 똑같이 포즈를 취하며 기차 앞에서 촬영하는 건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1960~70년대를 살았던 중년 부부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찾아오고, 그 시절을 살지 않은 20대는 호기심으로 찾아온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와 한가인이 입었던 1970년대 교복을 대여해주는 곳이 군데군데 있어, 선도부 완장에 옛날 책가방까지 소품으로 들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중년들은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고 젊은 층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신나한다.

연탄불에서 구워먹는 추억의 간식도 꿀맛

양손을 마주하고 빨대를 돌려 입으로 쏙 빼먹던 ‘아폴로’, 문방구 앞 뽑기기계에 동전을 넣고 한줌씩 먹던 ‘꾀돌이’, 별사탕과 라면의 환상적인 하모니 ‘뽀빠이’ 등 불량식품이라고 불렸던 추억의 간식을 파는 가게가 경암동 철길마을에는 많이 들어서 있다. 과자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31가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불량식품이라고 절대 안 사주셨거든요. 그때 못 먹었던 아쉬움을 풀려고 추억의 간식을 파는 가게를 열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우리 가게에 오시면 연탄불에 구워 먹는 쫀드기와 달고나 만들기는 꼭 하고 가세요. 특히 초등생 아이들이 달고나 만들기를 엄청 재밌어 해요. 설탕이 서서히 녹거나 식소다를 넣으면 부푸는 모습이 신기한지 계속 하고 싶다는 바람에 같이 오신 부모님들이 많이 난감해 하세요.”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옛 추억을 재생하기 위해 연탄불을 사용한다는 영희네점빵은 연탄불만의 특별함을 자랑했다. 은근한 연탄불에 타닥타닥 구워지는 쫀드기와 달콤하고 은은한 향을 풍기며 만들어지는 달고나는 가스불이 흉내낼 수 없는 투박함으로 맛을 더해준다. 간식만으로 아쉽다면 식사는 구수한 누룽지탕이 연상되는 군산의 명물 물짜장을 추천한다.
군산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고속버스가 편하지만, 철길마을의 운치를 살리려고 기차를 선택한다면 KTX 익산역에서 환승하거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야 한다. 기차 여행은 속도는 느리지만, 바깥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KTX와 달리 삐그덕 소리를 내는 열차 이음새 소리를 들으며 느리게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