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인데


남보다 더
부딪힐까?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하지만 가족만큼 나를 힘들게 하거나 상처 주는 사람도 없다. 왜 사랑하는 가족인데도 더 많이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아빠는 나랑 너무 달라요!”라든가 “자식이면서도 부모를 이렇게 모르다니…” 등 아픔과 상처는 끝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다.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일러스트 이정윤

다름은 결국 같음을 의미한다

그 비밀을 심리학 명언에서 찾아보았다. 바로, “세상의 많은 다름은 결국 같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문구는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밝혀낸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간단한 실험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에게 PC와 노트북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는 PC와 고양이를 보여준다. 그러고 난 뒤, 좀 우습겠지만 이런 질문을 한다. “어느 쌍이 서로 더 유사한가요?” 이 질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PC와 노트북이 서로 유사하죠!”라며 코웃음 치며 대답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금부터다. 이렇게 대답한 사람들을 다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PC와 노트북의 차이점을,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PC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종이에 최대한 많이 써보라고 한다. 결과는 흥미롭다. 사람들은 PC와 노트북의 차이점을 더 많이 써내려간다. 반면, PC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쓰는 사람은 난감해 하면서 적을 게 없다고 볼 멘 소리를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유사하고 가까운 대상들 간에는 쉽게 차이점이 발견되고 더 부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통점이 많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차이점을 많이 느낀다. 그러니 가족 간의 이질감과 그로 인한 상처가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만큼 가깝고 유사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다름을 크게 느낀다

지금까지 가족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한 번 되돌아보자. 자신과 뜻을 같이 하고 실제로도 자신을 가장 위해주는 소중한 부모형제다. 그런데도 사소한 의견 차이로부터 ‘나와 함께 갈 사람이 아니구나’ 혹은 ‘아, 우리는 가족인데 왜 이리 다를까’라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다. 이는 가족도 관계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족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만족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방해하는 요인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해 왔다. 그중 부정적인 요인에 주목한 석학이 바로 심리학자 알버트 앨리스(Albert Ellis)다. 그는 관계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비합리적 신념’을 꼽았다.
비합리적 신념이란 실제적이지 않으며 비논리적이고 근거가 없는 사고나 신념을 뜻한다. 비합리적 신념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것은 ‘지금 다루고 있는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맞지 않으면 결국 이 관계가 종말이나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하는 그릇된 신념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이 그릇된 신념을 가질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신념은 실제로, ‘어떻게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견이 맞지 않을까?’라는 작은 것부터 출발한다. 이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리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질수록 관점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다.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 쉬운 관계가 가족이다. 실제로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타인 앞에서 가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가족을 멀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필자도 사실 이 대목에서 뜨끔해 하고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나와 무엇이 다른지 더 잘 느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 사실을 간과하게 되면 끊임없이 탐닉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과 가까워지면 같은 이유로 다시금 밀어내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주위에 늘 새로운 인물밖에 없는 사람들을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다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가족!

중요한 것은 가족이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으로 인한 장점을 평소에 즐겨 이야기하면 좋다. “와! 아빠는 꽃을 좋아하는데 우리 딸은 흙을 좋아하는구나. 그러니 아빠와 우리 딸이 만나면 화분이 되겠어. 그래서 우린 한 팀인가 봐”라는 식이다. 음식 취향이 다른 부부의 경우에는 이런 말은 어떨까. “나는 한식 킬러인데 당신은 양식 마니아니 우리 아이들은 좋겠어. 양쪽을 다 즐길 수 있으니 말이야!”
같음을 너무 강조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같다면 그건 가족이 아니라 광신도 집단이나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나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데도 즐거운 것이 가족이다. 한 마디 더 첨언하자면 인간은 진화적으로 부모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어 있다. 생각해 보시라.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인데도 성격이 극과 극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 이유에 대한 추정은 다양하고 아직 학문적으로 연구가 필요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이렇게 가정하고 있다. 그래야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가족이 서로 다른 건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자산인 셈이다. 그걸 부정하는 건 인류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랑하는 가족인데


남보다 더
부딪힐까?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하지만 가족만큼 나를 힘들게 하거나 상처 주는 사람도 없다. 왜 사랑하는 가족인데도 더 많이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아빠는 나랑 너무 달라요!”라든가 “자식이면서도 부모를 이렇게 모르다니…” 등 아픔과 상처는 끝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다.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일러스트 이정윤

다름은 결국 같음을 의미한다

그 비밀을 심리학 명언에서 찾아보았다. 바로, “세상의 많은 다름은 결국 같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문구는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밝혀낸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간단한 실험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에게 PC와 노트북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는 PC와 고양이를 보여준다. 그러고 난 뒤, 좀 우습겠지만 이런 질문을 한다. “어느 쌍이 서로 더 유사한가요?” 이 질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PC와 노트북이 서로 유사하죠!”라며 코웃음 치며 대답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금부터다. 이렇게 대답한 사람들을 다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PC와 노트북의 차이점을,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PC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종이에 최대한 많이 써보라고 한다. 결과는 흥미롭다. 사람들은 PC와 노트북의 차이점을 더 많이 써내려간다. 반면, PC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쓰는 사람은 난감해 하면서 적을 게 없다고 볼 멘 소리를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유사하고 가까운 대상들 간에는 쉽게 차이점이 발견되고 더 부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통점이 많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차이점을 많이 느낀다. 그러니 가족 간의 이질감과 그로 인한 상처가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만큼 가깝고 유사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다름을 크게 느낀다

지금까지 가족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한 번 되돌아보자. 자신과 뜻을 같이 하고 실제로도 자신을 가장 위해주는 소중한 부모형제다. 그런데도 사소한 의견 차이로부터 ‘나와 함께 갈 사람이 아니구나’ 혹은 ‘아, 우리는 가족인데 왜 이리 다를까’라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다. 이는 가족도 관계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족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만족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방해하는 요인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해 왔다. 그중 부정적인 요인에 주목한 석학이 바로 심리학자 알버트 앨리스(Albert Ellis)다. 그는 관계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비합리적 신념’을 꼽았다.
비합리적 신념이란 실제적이지 않으며 비논리적이고 근거가 없는 사고나 신념을 뜻한다. 비합리적 신념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것은 ‘지금 다루고 있는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맞지 않으면 결국 이 관계가 종말이나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하는 그릇된 신념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이 그릇된 신념을 가질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신념은 실제로, ‘어떻게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견이 맞지 않을까?’라는 작은 것부터 출발한다. 이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리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질수록 관점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다.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 쉬운 관계가 가족이다. 실제로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타인 앞에서 가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가족을 멀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필자도 사실 이 대목에서 뜨끔해 하고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나와 무엇이 다른지 더 잘 느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 사실을 간과하게 되면 끊임없이 탐닉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과 가까워지면 같은 이유로 다시금 밀어내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주위에 늘 새로운 인물밖에 없는 사람들을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다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가족!

중요한 것은 가족이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으로 인한 장점을 평소에 즐겨 이야기하면 좋다. “와! 아빠는 꽃을 좋아하는데 우리 딸은 흙을 좋아하는구나. 그러니 아빠와 우리 딸이 만나면 화분이 되겠어. 그래서 우린 한 팀인가 봐”라는 식이다. 음식 취향이 다른 부부의 경우에는 이런 말은 어떨까. “나는 한식 킬러인데 당신은 양식 마니아니 우리 아이들은 좋겠어. 양쪽을 다 즐길 수 있으니 말이야!”
같음을 너무 강조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같다면 그건 가족이 아니라 광신도 집단이나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나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데도 즐거운 것이 가족이다. 한 마디 더 첨언하자면 인간은 진화적으로 부모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어 있다. 생각해 보시라.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인데도 성격이 극과 극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 이유에 대한 추정은 다양하고 아직 학문적으로 연구가 필요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이렇게 가정하고 있다. 그래야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가족이 서로 다른 건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자산인 셈이다. 그걸 부정하는 건 인류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