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사유와
공감을 나누다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6년 전 그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피아노도 ‘제법 치는’ 독일 청년으로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 후 시사와 예능의 경계를 오가는 활동으로 지적인 사유와 따뜻한 공감의 웃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그가 최근엔 피아노 연주자로서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피아노란 늘 ‘자신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평생의 친구’라 말하는 그의 행복한 취미생활을 들어보자.

글 김수연 사진 안지섭

  Q  
방송활동으로 분주한 가운데 피아노 앨범까지 낼 정도이니, 다니엘에게는 피아노가 취미 이상의 의미이실 듯합니다.
전공이 아니면서 이 정도 실력을 갖추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피아노는 10살부터 14살까지 레슨을 받은 게 다예요. 그 후론 파이프 오르간에 푹 빠져 지냈는데, 성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연주할 정도까지는 됐었죠. 저는 이루마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언젠가 유튜브로 ‘피아노 가이즈’라는 퓨전음악그룹을 알게 되면서 ‘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좋아서 즐기는 음악에서 어느 날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혼자 곡도 좀 써보기 시작한 게 이번에 ‘Lasting Memory’라는 앨범까지 내게 되었네요. 아직은 의욕만큼 실력이 부족해서 독학으로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Q  
피아노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어머니 얘기가 꼭 나오더군요.
가족과 함께 연주하던 추억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연주한다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죠. 저는 그런 기억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머니는 바이올린을 켜고, 나는 피아노 반주를 하고.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네 손으로 연주하던 일’도 너무 즐겁죠. 그냥 그게 우리의 일상이고 문화였어요. 제가 만든 곡 중에 ‘스마일링 이노센스’라는 곡이 있는데, 바로 어머니와 함께 연주하던 추억과 그 느낌을 담아 만든 겁니다.

 

  Q  
피아노 외에도 합기도 4단, 태권도 2단의 실력을 갖췄더군요.
언제부터 접하게 되신 건가요?

독일에서 처음 태권도를 배웠어요. 청소년 때죠. 사실 이것 때문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동양 무예는 그냥 스포츠가 아니라 철학이 있고 정신과 인성적 측면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합기도는 유튜브를 보고 처음 알았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수련하기 시작했죠. 공부도 하고 방송도 해야 해서 무예에 올인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절대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중요한 매개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수련하는 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Q  
피아노가 치고 싶어지는 순간은 대개 어떤 때입니까?

늦은 밤,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을 때 창문을 활짝 열고 눈 앞에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앉지요. 밤의 감성이란 그런 것 같아요. 뭔가 간절하게, 가라앉았던 내면의 자아를 일으키지요. 어떤 날은 정말 미친 듯이, 서너 시간 동안 어깨가 아프도록 건반을 두드리며 빠져드는 날이 있어요. 근데 이게 파도타기 같아요. 어떤 땐 너무너무 치기 싫을 때도 있으니까요. 음악에 대한 끌림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고 감정과 상태에 따라 다 다르죠.

 

  Q  
취미로서의 피아노, 취미로서의 무예는 다니엘에게 어떤 득이 있는 건가요?

두 가지 다 나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아이템이에요. 이상하게 파고들어 갈수록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참 많아요. 하나는 예술, 하나는 운동. 얼핏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말이죠. 그런데 무도를 영어로 ‘마셜 아츠(martial arts)’라고 하잖아요? 뭔가 통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인 거겠죠. 두 가지 다 어느 정도 마스터하기까지 10년은 걸리는데, 이때까지는 일정한 규칙을 익히며 배워가지만 어느 순간 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는 단계가 되고, 나중엔 그 규칙 같은 걸 버리고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가능해집니다. 작곡도 하고, 내 감성을 담은 연주도 가능해져요.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시점부터 나만의 동작이 나올 수 있게 돼요. 그 순간의 쾌락이 정말 엄청나죠.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아요.

 

  Q  
‘반려악기’라는 개념으로 릴레이 기부 캠페인도 하셨더군요.
그런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뜻하지 않게 방송인이 되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경제적 안정도 얻었고요. 뭔가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었어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성당에서 자선 연주회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2016년에 작은 규모로 음악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저와 함께 무대에 서주셔서 정말 뜻깊었습니다. 그러다 낙원상가에서 하는 ‘반려악기 릴레이 나눔 캠페인’에 참가 제의가 와서 함께했습니다. 그때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산 피아노도 기증했는데요, 그걸로 시골에 있는 누군가에게 음악적 기회를 줄 수 있다 생각하니 정말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Q  
대중들은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다니엘의 어떤 모습에 공감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또한 다니엘만의 ‘유일함’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요, 아마도 독일인이라는 점도 한몫하는 거겠죠? 현대사 가운데 비슷한 상처가 있고, 여러 가지로 연결점이 많아요. 제 전공을 살려 국제 관계나 인문학 관련 프로그램에 많이 나갔는데요, 독일 통일의 경험이나 잘 몰랐던 독일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이 관심과 공감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듣기 좋아할 만한 얘기만이 아니라 가끔은 쓴소리도 합니다. 가령 그런 거 있잖아요? 한국의 ‘위대한 민족성’이라든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식의 말들. 독일에서는 아주 예민한 주제거든요. 위험한 생각들이고요. 또 일본은 무조건 다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죠. 이런 얘기를 하면 악플도 많이 받고 하는데, 그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다고 제가 뭔가 대단한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전문가나 교수는 아니니까요. 말하자면 시사 다큐와 예능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되도록 인간적 공감과 즐거움을 함께 드릴 수 있는 방송을 하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Q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니엘에게 가장 특별한 나라가 되었을 것 같군요. 독일인 다니엘의 눈으로 본 한국, 또는 한국인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창덕궁 앞에서 본 파란 하늘과 잘 차려입은 시민들의 활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비 오는 날도 많고 늘 심심했던 독일에 비해 한국은 사계절 각기 다른 매력과 역동성이 있는 나라죠. 특히 산중에 있는 절을 찾아가는 걸 전 아주 좋아해요. 아름다운 자연도 좋고, 절의 건물들이 예술적인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창덕궁 앞에서 본
파란 하늘과 잘 차려입은
시민들의 활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겁니까?

6년 전에 현재의 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듯이, 앞으로의 인생도 알 수는 없죠. 그러나 지금처럼 방송하고, 피아노도 치고, 운동도 하며 사는 삶의 기본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이 정말로 행복하답니다. 물론 그 세 가지 다 끝없이 공부하고 연습해서 현재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계속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세요.

지적인 사유와
공감을 나누다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6년 전 그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피아노도 ‘제법 치는’ 독일 청년으로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 후 시사와 예능의 경계를 오가는 활동으로 지적인 사유와 따뜻한 공감의 웃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그가 최근엔 피아노 연주자로서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피아노란 늘 ‘자신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평생의 친구’라 말하는 그의 행복한 취미생활을 들어보자.

글 김수연 사진 안지섭

  Q  
방송활동으로 분주한 가운데 피아노 앨범까지 낼 정도이니, 다니엘에게는 피아노가 취미 이상의 의미이실 듯합니다.
전공이 아니면서 이 정도 실력을 갖추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피아노는 10살부터 14살까지 레슨을 받은 게 다예요. 그 후론 파이프 오르간에 푹 빠져 지냈는데, 성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연주할 정도까지는 됐었죠. 저는 이루마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언젠가 유튜브로 ‘피아노 가이즈’라는 퓨전음악그룹을 알게 되면서 ‘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좋아서 즐기는 음악에서 어느 날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혼자 곡도 좀 써보기 시작한 게 이번에 ‘Lasting Memory’라는 앨범까지 내게 되었네요. 아직은 의욕만큼 실력이 부족해서 독학으로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Q  
피아노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어머니 얘기가 꼭 나오더군요.
가족과 함께 연주하던 추억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연주한다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죠. 저는 그런 기억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머니는 바이올린을 켜고, 나는 피아노 반주를 하고.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네 손으로 연주하던 일’도 너무 즐겁죠. 그냥 그게 우리의 일상이고 문화였어요. 제가 만든 곡 중에 ‘스마일링 이노센스’라는 곡이 있는데, 바로 어머니와 함께 연주하던 추억과 그 느낌을 담아 만든 겁니다.

 

  Q  
피아노 외에도 합기도 4단, 태권도 2단의 실력을 갖췄더군요.
언제부터 접하게 되신 건가요?

독일에서 처음 태권도를 배웠어요. 청소년 때죠. 사실 이것 때문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동양 무예는 그냥 스포츠가 아니라 철학이 있고 정신과 인성적 측면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합기도는 유튜브를 보고 처음 알았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수련하기 시작했죠. 공부도 하고 방송도 해야 해서 무예에 올인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절대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중요한 매개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수련하는 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Q  
피아노가 치고 싶어지는 순간은 대개 어떤 때입니까?

늦은 밤,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을 때 창문을 활짝 열고 눈 앞에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앉지요. 밤의 감성이란 그런 것 같아요. 뭔가 간절하게, 가라앉았던 내면의 자아를 일으키지요. 어떤 날은 정말 미친 듯이, 서너 시간 동안 어깨가 아프도록 건반을 두드리며 빠져드는 날이 있어요. 근데 이게 파도타기 같아요. 어떤 땐 너무너무 치기 싫을 때도 있으니까요. 음악에 대한 끌림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고 감정과 상태에 따라 다 다르죠.

  Q  
취미로서의 피아노, 취미로서의 무예는 다니엘에게 어떤 득이 있는 건가요?

두 가지 다 나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아이템이에요. 이상하게 파고들어 갈수록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참 많아요. 하나는 예술, 하나는 운동. 얼핏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말이죠. 그런데 무도를 영어로 ‘마셜 아츠(martial arts)’라고 하잖아요? 뭔가 통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인 거겠죠. 두 가지 다 어느 정도 마스터하기까지 10년은 걸리는데, 이때까지는 일정한 규칙을 익히며 배워가지만 어느 순간 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는 단계가 되고, 나중엔 그 규칙 같은 걸 버리고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가능해집니다. 작곡도 하고, 내 감성을 담은 연주도 가능해져요.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시점부터 나만의 동작이 나올 수 있게 돼요. 그 순간의 쾌락이 정말 엄청나죠.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아요.

  Q  
‘반려악기’라는 개념으로 릴레이 기부 캠페인도 하셨더군요.
그런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뜻하지 않게 방송인이 되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경제적 안정도 얻었고요. 뭔가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었어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성당에서 자선 연주회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2016년에 작은 규모로 음악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저와 함께 무대에 서주셔서 정말 뜻깊었습니다. 그러다 낙원상가에서 하는 ‘반려악기 릴레이 나눔 캠페인’에 참가 제의가 와서 함께했습니다. 그때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산 피아노도 기증했는데요, 그걸로 시골에 있는 누군가에게 음악적 기회를 줄 수 있다 생각하니 정말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Q  
대중들은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다니엘의 어떤 모습에 공감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또한 다니엘만의 ‘유일함’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요, 아마도 독일인이라는 점도 한몫하는 거겠죠? 현대사 가운데 비슷한 상처가 있고, 여러 가지로 연결점이 많아요. 제 전공을 살려 국제 관계나 인문학 관련 프로그램에 많이 나갔는데요, 독일 통일의 경험이나 잘 몰랐던 독일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이 관심과 공감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듣기 좋아할 만한 얘기만이 아니라 가끔은 쓴소리도 합니다. 가령 그런 거 있잖아요? 한국의 ‘위대한 민족성’이라든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식의 말들. 독일에서는 아주 예민한 주제거든요. 위험한 생각들이고요. 또 일본은 무조건 다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죠. 이런 얘기를 하면 악플도 많이 받고 하는데, 그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다고 제가 뭔가 대단한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전문가나 교수는 아니니까요. 말하자면 시사 다큐와 예능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되도록 인간적 공감과 즐거움을 함께 드릴 수 있는 방송을 하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Q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니엘에게 가장 특별한 나라가 되었을 것 같군요. 독일인 다니엘의 눈으로 본 한국, 또는 한국인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창덕궁 앞에서 본 파란 하늘과 잘 차려입은 시민들의 활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비 오는 날도 많고 늘 심심했던 독일에 비해 한국은 사계절 각기 다른 매력과 역동성이 있는 나라죠. 특히 산중에 있는 절을 찾아가는 걸 전 아주 좋아해요. 아름다운 자연도 좋고, 절의 건물들이 예술적인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창덕궁 앞에서 본
파란 하늘과 잘 차려입은
시민들의 활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겁니까?

6년 전에 현재의 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듯이, 앞으로의 인생도 알 수는 없죠. 그러나 지금처럼 방송하고, 피아노도 치고, 운동도 하며 사는 삶의 기본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이 정말로 행복하답니다. 물론 그 세 가지 다 끝없이 공부하고 연습해서 현재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계속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세요.